항목 ID | GC041008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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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姜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해준 |
본관 | 진주 - 경상남도 진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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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 시조 | 강이식(姜以式) |
[정의]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고 진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남도 서산시의 세거 성씨.
[개설]
진주 강씨는 지리지 및 읍지의 성씨조에 등재되지 않은 데다, 관련 기록도 부족하여 서산에 입향한 시기를 추적하기가 어렵다. 다만 1619년에 편찬된 서산의 사찬읍지 『호산록(湖山錄)』의 인물 기록 중 강몽서(姜夢瑞)의 본관이 ‘진주’로 확인된 점을 고려하면 이 시기부터 서산의 유력 성씨인 청주 한씨와 혼인 관계였고, 서산 지역의 사족들과 함께 다양한 향촌 활동에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원]
진주 강씨는 고구려 때 도원수를 지낸 강이식을 시조로 한다. 강씨가 진주에 세거한 것은 8세 강우덕(姜友德)이 이거(移居)한 이후부터라고 하며, 또는 통일 신라에 강진(姜縉)이 진주 지역의 진양후(晉陽侯)로 봉해지면서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외에 강우덕의 부친 강회백(姜淮伯)이 진양(晉陽)에 귀양을 간 것을 계기로 진주를 세거지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입향 경위]
서산의 진주 강씨가 어떤 경위로 서산에 입향하였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1619년에 편찬된 『호산록』의 기록에 한효순의 후취 부인이 강몽서의 손녀였다는 것으로 보면, 강씨 역시 서산의 유력한 성씨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현황]
강씨 중에서 기록으로 확인되는 강몽서는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관직을 지냈는지는 불확실하다. 그의 아들 강효윤(姜孝胤)은 영산 현감을 지내던 도중 임진왜란을 만나 의병 활동을 하기까지 했는데, 이에 대한 포장 활동은 없었다. 이처럼 당시 이 집안은 이미 서산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확실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강몽서의 생원 급제 방목에는 거주지가 서울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호산록』에서는 강흡(姜洽)이라는 사람이 향임을 맡아 고을의 풍속을 바르게 하였다고 하니, 그가 강효윤의 조상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한편 강씨와 서산 지역의 유력 성씨들과의 교류는 학맥과 혼맥을 통해서 이어지는데, 강몽서는 『호산록』을 지은 한여현과 교류가 깊었으며, 좌의정을 지낸 한효순이 강몽서의 손녀사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