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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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夢瑞 |
영어음역 | Gang Mongseo |
이칭/별칭 | 경휴(景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춘진 |
활동 시기/일시 | 1543년 - 생원시에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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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3년 - 진사시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임진왜란 시 의병 활동 |
거주|이주지 | 덕천촌 - 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 |
성격 | 의병|충신 |
성별 | 남 |
[정의]
조선 전기 서산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진주. 자는 경휴(景休). 아버지는 강의(姜儀)이고, 아들은 영산현감으로 임진왜란 때 죽은 강효윤(姜孝胤)이다. 서산의 진주 강씨는 서산 지역에서 오래 산 성씨로 서산 강씨라 불리기도 한다. 기록이 많지 않아 추적이 어렵지만 서산의 유력 성씨인 청주 한씨 한효순(韓孝純)의 후취 부인이 강몽서(姜夢瑞)의 손녀인 것으로 미루어 영향력 있는 성씨였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활동 사항]
강몽서(姜夢瑞)는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3등 5위로 합격하고 같은 해 진사시에 3등 15위로 합격하였다. 진주 강씨와 서산 지역의 유력 성씨들은 주로 학맥과 혼맥을 통해 교류가 이루어졌는데, 이중 강몽서는 『호산록(湖山錄)』을 지은 한여현(韓汝賢)과 특히 교류가 잦았다. 『호산록』에는 강몽서와 강효윤 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강몽서는 서산 덕천촌[현 서산시 덕지천동]에 살았다. 아들 강효윤이 영산현감을 지낼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성이 함락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몽서는 고을 사람들과 패잔병을 이끌고 달려가 적을 몰아냈다. 하지만 강효윤은 왜군에게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