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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602
한자 南海神祠海神祭
이칭/별칭 옥야리 신산 남해당제,해신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문화유산/무형 유산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신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비물질 문화유산 지정 일시 1986년 9월 29일연표보기 - 남해신사 해신제, 전라남도 기념물 제97호로 지정
의례 장소 남해신당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신사 마을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3월|11월
신당/신체 남해신당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 신사 마을남해신사에서 매년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남해신사 해신제 는 남해신사 제례 보존 위원회 주관으로 시종면 옥야리 신사 마을에서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지내는 공동 제사이다. 옥야리 신사 남해당제, 해신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2001년에 복원된 남해신사에서 남해신[신당 대왕]에게 지내는 제사로서 지역 주민들이 제관을 선정하고 엄숙하게 모시고 있다. 역사적 근거에 따라 남해신사가 복원되면서 그에 맞춰 남해신사 해신제도 복원되었다.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마을의 무사 안녕을 비는 뜻을 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고려 8대 현종 때 거란이 침입하여 현종은 당시 나주군 시종면 옥야리 산 1005번지인 현재 남해당에 피난하고, 세자는 옥야리 산915-1번지 치차산에 피난을 하였다. 이때 남해신이 현종의 꿈에 나타나 빨리 피신하라는 현몽을 주었다. 꿈을 깨어 보니 바닷물이 빠지고 갯벌만 남아 현종이 무사히 세자와 피신하여 종묘를 구하게 되었다. 현종은 감사의 뜻으로 남해당을 건립하여 매년 나주 목사로 하여금 6개 현(縣)을 통괄하여 제사를 모시게 했다고 한다.

원래 남해신사는 중사 또는 소사로서 국가에서 관장하던 제사였으나 일제 강점기 때 폐지되었다. 2001년 남해신사가 복원됨에 따라 2003년부터 ‘남해신사 제례 보존 위원회’가 결성되어 매년 제사를 관장해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폐허가 된 남해신당이 2001년 복원되고 고증에 따라 그 신당 안에 일명 신당 대왕인 남해신을 봉안하게 되었다. 현재는 신당 정면 벽에 남해신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제상도 신당 안에 진설한다. 신당의 형태는 전면 3칸, 옆면 1.5칸, 맞배지붕이다.

[절차]

남해신사 제례 보존 위원회에서는 매년 3월과 11월에 제사를 모신다. 제관은 영암군의 유력 인사들을 위주로 선정한다. 특히 향교와 관련된 인물들이나 각 기관장들이 제관을 맡는 경우가 많다.

남해신사 제례 보존 위원회에서 제물을 마련하여 위판 앞에 소머리와 채소, 과일 등 생물로 제상을 차리고 일반적인 유교식 제례 절차에 따라 강신(降神)·참신(參神)·초헌(初獻)·독축(讀祝)·아헌(亞獻)·종헌(終獻)·헌작(獻爵)·음복(飮福)·소지(燒紙)의 순으로 진행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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