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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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Dolmen |
이칭/별칭 | 지석묘(支石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박보현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 초기의 무덤 형태.
[구조]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일반적으로 만들었던 무덤으로, 내부구조는 대체로 우선 땅을 파서 움을 만들고, 그 안에 주로 돌을 이용하여 주검이 놓일 널[石棺]을 만들고 뚜껑을 덮은 후에, 그 위에 다시 커다란 돌을 얹은 꼴을 하고 있는데, 받침돌[支石]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받침돌로는 판석(板石) 또는 괴석(塊石)을 사용하였다. 고인돌은 발굴조사 한 결과로 보면 단순하게 한 기씩 단독으로 분포하는 경우도 있지만, 돌널을 설치한 후, 주위에 돌을 둥글거나 네모나게 깔아서 무덤의 범위[墓域]를 정한 것 들이 발견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묘역이 연결되어서 넓혀간 예, 또는 하나의 묘역 안에 여러 기의 석관을 배치한 예도 있다.
[분포]
고인돌무덤에 보이는 특징인 지하에 무덤을 두고 땅위에 마치 무덤표시를 위한 것처럼 상석을 얹는 이러한 현상은 가깝게는 중국 동해안과 동북지역에 분포하고 있어서 한국 고인돌의 기원과 관련하여 주목되긴 하지만 근거를 확인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무덤에서 함께 나오는 자료 곧 동반유물(同伴遺物)에서 지역적 차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토유물]
한반도에서 확인되고 있는 고인돌의 '껴묻거리'로 부장된 유물에는 간돌검[磨製石劍], 간돌살촉[磨製石鏃],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요녕식동검[遼寧式銅劍], 대롱처럼 생긴 옥(管玉) 등이 있는데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꼴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독자적 문화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칠곡지역 고인돌의 분포현황]
칠곡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 꼴 가운데 하나인 고인돌이 13지점 65기 분포하고 있는데, 상석의 숫자상으로는 '남율리[37기]-석전리[9기]-신리[6기]'로 나타나서 남율리가 중심권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복성리 고인돌군 발굴결과 상석보다는 주변에서 더 많은 유구가 설치되어 있어서 반드시 상석의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리고 판단된다. 앞으로 정식조사가 이루어진다면 고인돌을 통한 지역구조가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칠곡지역 고인돌의 구조]
칠곡 지역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약목면 복성리 지석묘군에서 3기가 발굴되었는데,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1호 고인돌은 14.2×7.2m정도의 장방형으로 깬 돌을 쌓고 내부에는 다시 깬 돌을 채워서 구획을 하고 상석(上石)을 얹은 구조로 추정되었는데 상석하부의 구조는 명확하지 않았다. 깐 돌의 사이에서 유구석분, 무문토기 편, 석창 등이 수습되었으나 유구와의 관련성을 추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호 고인돌도 1호와 유사한 구획을 갖춘 무덤[區劃墓]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내부구조는 널돌[板石]을 세워서 네 벽을 만들고 바닥에도 판석을 깐 전형적 석관묘를 하고 있다.
[칠곡지역 고인돌의 시기]
복성리 고인돌과 주변 매장시설인 석관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청동기시대 초기에 유행한 석촉이나 석검의 꼴은 보이지 않고 대부분 청동기시대 중기에 나타나는 마제석촉과 대롱옥들이어서 청동기시대 중기에 해당되며 청동기를 알고 있었는지는 판단할 근거가 없다. 다른 지역의 조사 성과를 보면 복성리 고인돌군을 남겼던 사람들은 비록 석관묘에 석촉과 장식으로 대롱옥을 묻는 일상적 장제의례를 갖추고 있었지만 요녕식 동검과 같은 청동기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