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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211
한자 二西面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인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개설
성격 행정 구역
면적 52.7㎢
가구수 563가구
인구[남,여] 1,030명[남자 510명, 여자 520명]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 속하는 법정면.

[개설]

화순군의 북쪽에 위치한다. 이서면 동쪽은 북면·동복면, 서쪽은 광주광역시와 화순읍, 남쪽은 동면(東面), 북쪽은 전라남도 담양군과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1914년 동복군이 화순군에 편입되면서 내서면과 외서면을 합해서 이서면(二西面)이라 칭한 데서 이서면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형성 및 변천]

이서면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87기 분포하고 있어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곳으로 여겨지며, 삼한 시대 마한 54개국 중 벽비리국(辟卑離國)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두부지현(豆夫只縣)의 일부였다.

757년(경덕왕 16)에 두부지현동복현(同福縣)으로 개칭하여 곡성군(谷城郡)에 붙일 때에는 곡성군 동복현 내의 자치 고을인 보령현(保寧縣) 지역이었다. 1018년(현종 9)에 동복현이 곡성군 소속에서 보성군 소속으로 바뀌면서 보성군 동복현 내의 자치 고을인 보령현 지역이었으며, 조선 1407년(태종 7)에 동복현화순현을 합하여 복성현이라 부를 때 복성현의 일부였으나 1413년(태종 13) 복순현화순현으로 개칭하면서 화순현의 일부로 되었다.

1759년 『여지도서』에 실린 “서쪽 방향에 내서면(內西面)과 외서면(外西面)이 있다”는 기록에서 이서면(二西面)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750년대 초반 만들어진 『해동지도』에는 외서면과 내서면이 표기되어 있다. 외서면에는 무등산·규봉산(圭峯山)·성산(星山) 등이 있고, 창랑정(滄浪亭)이 있다. 내서면은 주로치 서쪽에 있으며 남쪽에 구봉산이 있고 산 아래에 영봉사(靈鳳寺)가 있다.

1896년(고종 33) 칙령 제36호에 의해 전국 13도제가 실시됨에 따라 23부제가 폐지되고 전라남도 관할 동복군[4등군]의 내서면[14리]과 외서면[20리]이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서 동복군을 폐지하고 화순군에 편입하면서 내서면과 외서면을 합하여 이서면이라 부르게 되었다. 1963년 1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으로서 지금에 이른다.

[자연환경]

이서면의 서쪽에는 진산인 무등산이 있고 무등산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서쪽으로 이어져 안양산을 거쳐 남쪽의 별산으로 연결된다. 가장 남단인 묘치를 지나 동북쪽으로 적벽옹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악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동쪽으로 옹성산[563m]과 동복호·이서 적벽·적백산골 등과 인접하고 있다.

무등산에서 발원한 영신천과 안양산과 둔병재에서 발원한 안심천이 야사리에서 합류하여 적벽강이 되고 남으로 흘러 동복천이 되었으나 현재는 동복호로 유입된다. 넓은 평야가 없고 그나마 있던 평지는 동복댐 건설로 수몰되어 사라지고 없어졌다.

[현황]

이서면은 화순군의 북쪽에 위치하여 있다. 2012년 12월 현재 논 3.30㎢, 밭 3.70㎢, 임야 34.91㎢ 등을 포함한 총 52.7㎢의 면적에 563가구 1,030명[남자 510명, 여자 52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2개의 법정리와 14개의 행정리, 18개의 자연 마을을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는 갈두리·도석리·보산리·보월리·서리·안심리·야사리·영평리·월산리·인계리·장학리·창랑리 등이 있다.

이서면의 주산물은 벼이고 특산물은 누에·율무·배·한우이며, 주 소득원은 벼와 한우이다.

유물 및 유적으로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3호]가 있으며, 하백원의 만국전도와 동국지도[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85호]를 비롯하여 서화·간찰·전적·인장 등 94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규남 박물관이 있다.

장학리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60호인 화순 적벽을 비롯하여 고려 말 축연(祝衍)이 건립하였으나 1985년 동복댐 확장으로 폐사된 한산사지(寒山寺址)와 높이 36㎝, 대좌 10.5㎝, 입상 25.5㎝의 석가모니 입불상인 한산사 목불(寒山寺木佛)[제작 연대 미상]이 있다.

안심리 하반 마을에는 반계사(盤溪祠)[1942년 중수]와 안양산 아래에 있었으나 현재는 폐사된 안심사지(安心寺址)가 있다. 창랑리에는 1636년(인조 14) 건립된 대명단(大明壇)과 1856년(철종 7) 건립된 복주단(福洲壇)이 있다. 보산리에는 627년(무왕 28)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유마운의 딸 보안(普安)이 건립했다고 전하는 보안사지(普安寺址)가 있고 월산리에는 낙암지(落庵址)가 있다.

영평리에는 지장암지(地藏庵址)와 신라 시대 의상(義湘)[625~702]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인 규봉사(圭峰寺)를 비롯하여 은신대(隱身臺)·삼존석(三尊石)·십이대(十二臺)·광석대(廣石臺)·풍혈대(風穴臺)·설법대(說法臺) 등의 바위가 있다. 또한 높이 136㎝, 폭 96㎝인 석불암 마애 여래 좌상(石佛庵磨崖如來坐像)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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