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7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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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鳳男 |
영어음역 | Jeong Bongnam |
이칭/별칭 | 고산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연정 |
성격 | 효자|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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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
성별 | 남 |
생년 | 1560년 |
몰년 | 1609년 |
본관 | 경주 |
대표관직 | 의금부도사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이자 학자.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고산(孤山). 조선의 개국공신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7세손이며, 남대(南臺) 집의(執義) 정흠(鄭欽)의 현손이다. 정방광(鄭邦絖)[1471~1513]은 경기도 안성에서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방동으로 이전한 입향조(入鄕祖)인데, 정봉남과 정황남이 그의 증손이다.
[활동사항]
정봉남(鄭鳳男)[1560~1609]은 진천 출신의 학자이자 효자로 신잡(申磼)의 백원서원(百源書院)에서 수학하였다. 사마시에 급제하고 찰방에 추천되었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에 제수되었으나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부임하지 않았다. 부모가 병환 중일 때 변을 맛보고 손가락에서 피를 내 드리기도 하였으며, 상을 당한 후에는 시묘살이를 하였다.
정봉남이 개를 한 마리 길렀는데, 시묘살이를 할 때 항상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주변 맹수로부터 주인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그가 병이 나면 개가 본가로 가서 큰소리로 짖어 사람들에게 알려, 사람들이 개도 정봉남의 지극한 효성에 감격했다고 하였다.
[묘소]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산109-2에 경주정씨 묘역이 있으며, 진천군 덕산면 산수리 산24번지에 정봉남의 묘소가 있다. 묘소는 새로이 원형 석축으로 개축하였으며 상석·향로석·혼유석·망주석 1조를 갖추었다. 가첨석이 없는 묘비의 앞면에는 ‘일의금부도사정공봉남지묘(逸義禁府都事鄭公之墓)’라 하고, 뒷면에 ‘갑진십일월일(甲辰十一月日)’이라 하여 건립 연대를 적고 있다.
[상훈과 추모]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삼용리 631번지[용사길 28-33] 용사마을 뒷산자락에 경주정씨 입향조인 정방광과 그의 증손 정봉남, 정황남 등 3위를 모신 경모사(景慕祠)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반 칸의 앞퇴를 두고 ‘경모사(景慕祠)’라는 편액을 달았다. 외삼문 밖 오른쪽에는 묘정비를 세웠는데 비제는 ‘경모사비(景慕祠碑)’로 4면비이며, 비문은 정동휘가 짓고 글씨는 이석환이 썼으며 1989년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