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9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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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永植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구영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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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구영식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에서 3·1운동 발생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8일 - 구영식 경기도 양주군 화도면 3·1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9일 - 구영식 투옥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6월 - 구영식 징역 6월 선고 확정 |
출생지 | 답내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
거주|이주지 | 답내리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 |
활동지 | 화도면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구영식(具永植)[1889~?]은 1889년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답내리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 답내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19년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제의 가혹한 진압이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해당하는 양주군 화도면 마석우리 만세 시위 현장에서도 나타났다.
1919년 3월 18일 밤 10시경 화도면 마석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의 이달용(李達鎔)을 위시하여 화도면 월산리[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의 김원석(金元石)·이승면(李承冕)·남궁우룡(南宮又龍)·윤준(尹俊)·김필규(金弼圭)·강선원(姜善遠), 화도면 답내리의 구영식·권은(權慇)·이윤원(李允遠) 등이 주민 200명과 함께 만세 시위를 벌였다. 한 시간 만에 1,000명으로 늘어난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가 있는 화도면 마석우리의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1919년 3월 16일 구금된 이재하(李載夏)·이승보(李承輔)·이택하(李澤夏)의 석방을 요구하며 헌병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대가 군중을 해산시킬 목적으로 발포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달용을 비롯하여 손복산(孫福山), 신영희(申榮熙), 유상규(兪相奎), 이교직(李敎稙) 5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으며 강덕여(姜德汝), 원대현(元大鉉), 윤균(尹均), 윤정석(尹丁石), 이재혁(李載赫) 등이 중상을 입었다. 또 김필규·윤준·남궁우룡·김원석 등 다수의 사람이 연행되어 고문을 당하였는데, 구영식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구영식은 1919년 4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구영식은 선고에 항고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1919년 6월 형이 확정되었다.
[상훈과 추모]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99번지에 화도면 일대의 만세 시위에 참여한 구영식 등의 인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