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연기군 기미독립선언 기념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382
한자 燕岐郡己未獨立宣言記念大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6년 03월 01일 - 연기군 3·1동지회가 연기군 기미독립선언 기념식 개최
전개 시기/일시 1947년 03월 01일 - 두 번째 연기군 기미독립선언 기념대회 개최
성격 사건

[정의]

1947년 세종 지역에서 일어난 기미년 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후학들에게 전승하기 위한 기념식.

[역사적 배경]

묵재(黙齋) 홍일섭(洪日燮)[1878~1935]과 경호(鏡湖) 장재학(張在學)[1862~1919]은 만세운동 당시 민족혼을 되살리는 데 노력한 인물들이다. 홍일섭은 시종원주사로 일하다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고종황제가 양위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조치원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르고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장재학은 경술국치 이후 납세를 거부하고 민적부를 소각하는 등의 저항을 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지속적으로 일제의 납세정책에 반대하다가 집안 재산을 강제로 압류 당하고 1917년 1월 23일 동생 장재규, 장남 장화진과 함께 전라남도 고흥의 거금도로 유배 당하였다.

[경과]

홍일섭과 장재학을 추모하기 위하여 1946년 연기군 3·1동지회는 연기군의 기미독립선언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연기군에서 있은 항일투쟁 역사의 의의를 후학들에게 고취하기 위하여 홍일섭과 장재학에게 감장(感狀)[군공을 치하하여 상관이 수여하는 표창장이라는 뜻의 일본에서 온 말이지만 여기서는 감사장의 의미로 사용]을 올렸다. 1947년 사회가 조금 더 안정되자 두 번째 ‘연기군 기미독립선언 기념대회’는 규모를 키우고 홍일섭과 장재학의 영령(英靈)을 위안하는 맹의섭(孟義燮) 대회장 명의의 감사장을 후손들에게 각각 전달하여 추모의 마음을 더하였다.

[결과]

1947년 3월 1일 연기군수와 군민들이 홍일섭의 묘 근처에 기념식수를 하고 제전을 올렸다. 한 달 후 청명일에 장재학의 후손들이 유림 등에 청하여 장재학의 묘에서 고축제(告祝祭)[신명에게 고하여 비는 제사]를 거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맹의섭『추운실기(鄒雲實記)』에만 기록된 지역의 역사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