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거성리 사창(巨城里社倉)은 조선 시대 해미현(海美縣)에 설치되어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서산시 운산면 거성리는 조선 시대에 서산과 해미의 접경지로 대교천의 동편에 있다. 지금은 내륙 지역이지만, 전언에 의하면 1900년 이전까지 마을 앞의 음지말들과 홍안들 일대가 모두 바다였고, 배가 들어와 정박하...
-
918년 고려 개국에서 1392년 멸망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 고려 시대의 서산 지역은 부성군(富城郡)을 중심으로 지곡현(地谷縣), 정해현(貞海縣), 여미현(餘美縣), 고구현(高丘縣)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해안의 드나듬이 심한 서산 지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군현이 설치된 것이다. 이 중 여미현은 백제 때 여촌현, 신라 때 여읍현이었다. 서산시 운산면 소재지...
-
충청남도 서산시의 자연환경과 풍속, 사적 등을 경험하며 유람하는 일. 서산시에는 131㎞의 해안선, 가로림만의 갯벌, 서산AB지구의 철새 도래지, 가야산 등의 자연 자원이 있다. 또한 충청남도의 북서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예로부터 대륙 문화 수입과 교류의 장으로 다양한 문화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내포 문화권...
-
개항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서산 지역의 근현대사는 개항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의 시기로 나누어서 살펴 볼 수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궁벽했던 서산에도 개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되었다. 국가 권력의 해체 과정에서 관료들의 수탈과 약탈이 빈번했고, 대외 무역의 확대에 힘입어 만석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인근 태안군 환동 지역...
-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의 개념은 포괄적이어서 금속이나 돌에 새긴 문자뿐만 아니라 나무와 그릇, 기와 등 글을 새길 수 있는 곳에 기록된 문자를 뜻한다. 금석문은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면서 기록자의 신원과 연대가 표기된 경우가 많고, 중앙 중심의 문헌 자료를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기록으로서의 가치가 높으나...
-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도비산 봉수(都飛山烽燧)는 안국산 봉수(安國山烽燧), 주산봉수(主山烽燧)와 더불어 서산시 관내에 자리하고 있는 3개의 봉수대 중 하나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서산군조에 “도비산 봉수는 동쪽으로는 홍주(洪州) 관내 고구(高丘)의 성산(城山)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태안(泰安)의 주산(主山)에...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반계리(磻溪里)의 ‘반’자와 만양리(晩陽里)의 ‘양’자를 따서 반양리(磻陽里)라 하였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만양리, 1911년 간행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만양니[晩陽里], 고현[磻溪里] 등 관련 명칭이 확인된다. 반계리의 한글 표현인 고현이란 명칭과...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봉산리(鳳山里)의 ‘봉’자와 생천리(生川里)의 ‘생’자를 따서 봉생리(鳳生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쳔[生川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봉생리는 조선 시대에 홍주목 고북면 생천리와 창리(倉里)로, 1895년 행정 구역 구역 개편에서 해미군 하도면 생천리와 창리로 되...
-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봉생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창 터. 봉생리 사창 터는 조선 시대 홍주목에서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 중 하나인 서창(西倉)이 있던 곳이다. 봉생리 사창(鳳生里社倉)이 있던 자리는 지금은 내륙이지만 개간하기 전까지 바다에 접한 곳이었고, 그 위치로 보아 서해안 수로 교통에 바로 연결되는 요충지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 이전...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부춘산 봉수(瑞山富春山烽燧)는 옥녀봉 뒤쪽 옛 북주산성(北主山城) 내에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북산봉수동응해미현안국산 서응태안군백화산(北山烽燧東應海美縣安國山西應泰安郡白華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당시 당진의 안국산[당시 해미현]과 태안의 백화산을 연결하던 봉수임을 알 수 있다. 북산은...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읍성.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은 1416년(태종 16) 이후 예산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이 서산으로 이설된 뒤, 1652년(효종 3) 청주로 옮겨 가기 전까지 약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거점성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해안 방비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집중...
-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세거 성씨는 15세기 전반까지 각 읍 성씨의 존재 상태를 살필 수 있는 주요한 사료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나오는 토성(土姓), 조선 시기의 재지 세력으로 동성(同姓) 마을[집성촌]의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세거 성씨는 전근대 사회에서 지역 사회의 토착 세력으로 향촌 사회를 좌우하며 중앙...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해미읍성에서 매년 6월에 개최되는 역사 문화 축제. 해미읍성 축제는 서산시에서 2000년부터 매년 6월에 개최하는 지역 축제로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서산 일대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 문화재, 민속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옛날 병영성의 특성을 살린 국내 유일의 ‘병영 체험 축제’라는 것이다. 축제...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산수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객관(客館) 터. 안흥정(海美安興亭)의 위치에 대해서는 전하는 기록마다 다르다. 송나라의 사신인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마도[현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그 위치가 “해미현(海美縣)의 동쪽 11리” 지점이라고 나와 있다. 이...
-
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과 운산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이후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여미현(餘美縣)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운데 하나였다. 여미현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 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三國...
-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충청남도 서산의 역사와 문화. 한반도의 중서남부에 돌출한 태안반도에 자리한 서산은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선진 문물이 해양을 통해 충청 내륙 지방으로 전달되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다수의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으며, 법인국사 탄문, 정인경(鄭仁卿)[1237~1305], 유숙(柳淑)...
-
전통 시대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 있었던 역로의 교통·통신 및 숙박 시설. 역원은 전통 시대 역로(驛路)에 설치되었던 국영 숙식 시설이다. 관리가 파견되어 역마와 역로를 관할하고, 길을 지나는 관원에게 말과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공문서의 신속한 전달과 관수 물자를 운반하는 육상 교통의 핵심 기관이다. ‘역(驛)’은 대로변에 12㎞마다 설치한 교통 통신 조직이라면, ‘원(院)’은 여행...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읍내리(邑內里)는 조선 시대 서산 해미읍성이 있던 해미현의 중심 마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서산 해미읍성은 1418년(태종 18)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이 해미현으로 옮겨진 후 1651년(효종 2) 다시 청주 상당성으로 옮길 때까지 233년간 충청병마절도사의 병영성이었던 곳이다. 1789년(정조 13)에 간행...
-
충청남도 서산 지역에서 이루어진 근대 이전 시기의 교육. 백제가 관할했던 삼국 시대의 서산 지역 교육에 대해서는 관련 기록이 현존하지 않아 상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통일 신라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당시 부성군(富城郡)의 태수로 최치원(崔致遠)[857~?]이 부임했던 기록을 통하여 최치원이 당시 서산 지역의 교육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
-
고려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縣). 정해현은 현재의 서산시 해미면 지역에 해당된다. 고려 태조 때에 고구현(高丘縣)의 땅을 분할하여 정해현이 만들어졌다. 995년(성종 14)에 운주도단련사(運州都團練使)를 두었는데 운주(運州)는 현재의 홍성군에 해당된다. 운주에는 군이 3개, 현이 11개가 소속되어 있었다. 정해현은 운주에 소속된 11개 현 가...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서산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이었던 서산군과 해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산군과 해미현은 독자적인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반을 지니고 있었다. 서산군은 본래 백제의 기군(基郡)이었으나 통일 신라 때 부성군(富城郡)으로 고쳐졌다. 이어 고려에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지다가 지서산군사(知瑞...
-
충청남도 서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주산봉수(主山烽燧)는 봉수 노선과 성격상 조선 시대 봉수 중 제5거 간봉(間烽) 노선의 11번째 연변 봉수(沿邊烽燧)였다. 주변에 있는 다른 봉수와 마찬가지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주산봉수는 동쪽으로 해미현(海美縣) 안국산 봉수(安...
-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염전에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 태양열로 수분을 증발시켜 식염을 결정시키는 방법.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서산군에 염소(鹽所)가 1곳, 염정(鹽井)이 2곳, 염분(鹽盆)이 3곳, 해미현에는 염분(鹽盆)이 1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본래 가마솥에서 바닷물이나 농축된 소금물을 끊여서 생산해 낸 소금인 자염(煮鹽)...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 있는 개항기 최광순(崔光淳)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최광순은 오위장(五衛將), 횡성현감(橫城縣監) 등을 역임하였으며, 1883년(고종 20)에 해미현감(海美縣監)으로 부임하여 만인산(萬人傘)을 받았다. 만인산이란 고을 백성들이 선정을 베푼 수령에게 그 덕을 기리기 위하여 바치던 물건으로, 비단으로 만들었고, 모양은 일...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서산 해미읍성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 조선 초기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은 원래 덕산(德山)에 설치되었다가, 왜구의 잦은 침략에 대한 방비와 서해안의 수호가 중요시되면서 1417년(태종 17) 이후 해미로 이설되었다. 해미로 옮겨진 이후, 충청병마절도사영으로 개칭되었고 1652년(효종 3) 청...
-
1416년 태종이 현재의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대인 해미현에 머문 사건. 1416년(태종 16) 2월 16일 태종이 도비산에서 사냥을 하고 해미현에 머물렀다. 이 기록은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단 한 줄의 기록으로 남아 전할 뿐이다. 『태종실록』에 왕이 도비산에 사냥을 나왔다가 해미현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시 순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남도 서산 지역의 땅과 자연 형세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인간의 삶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 가령 묘지, 가택, 관청, 사찰, 마을, 도시, 수도 등의 입지 선정 및 방위 배치, 공간 구성 등에 사용해 온 한국의 전통 지리학이자 공간 인식 체계이다. 풍수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인간과 환경 간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갖...
-
1894년 11월 충청남도 서산의 해미성에서 벌어진 내포 동학 농민군과 관군의 전투. 1894년 이른바 예포[북접] 농민군이 내포 지역에서 봉기를 일으킬 때, 서산 지역의 동학 교도들은 예포 농민군의 주력군 역할을 수행하였다. 홍주성 전투는 그동안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동학 농민 전쟁사에 새롭게 기록해야 할 중요한 전투였다. 홍주성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이후 해미성 전...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해미향교에 소장된 자료.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미현 지역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건립한 교육 기관이다. 해미향교는 1407년(태종 7)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대성전과 명륜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해미향교 소장 자료는 문서류, 현판류, 비석 등으로 다양하다. 『청...
-
충청남도 서산시에 속하는 행정면. 1407년(태종 7) 정해현의 ‘해’자와 여미현의 ‘미’자를 따서 해미면(海美面)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시대에 해미현의 동면과 남면 지역으로, 1914년 일제 강점기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면과 남면에 속한 동리와 서산군 동암면 석천리 일부를 합쳐 서산군 지성면으로 개편하고, 관유리, 귀밀리, 기지리, 대곡리, 동암리, 반양리, 산수리,...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에 있는 해미면 관할 행정 기관. 해미면사무소는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해미면은 백제 시대는 우견현, 고려 시대는 정해현에 속해있었는데 조선 시대에 와서 1407년(태종 7) 정해현과 여미현을 통합하여 해미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
-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서산 해미읍성(瑞山海美邑城)에서 지방도 647호선을 타고 북동쪽으로 약 1㎞ 정도 가면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이 나온다.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향교말로 들어서는 큰길로 접어들면 홍살문이 보이고, 해미향교(海美鄕校)는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해미향교는 조선 초 현유(賢儒)의...
-
조선 시대 충청남도 서산의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친 현. 해미현(海美縣)은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餘美縣)을 합한 서산 지역의 옛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정해현은 고려 태조 때 몽웅현(夢熊縣)의 아전 한씨(韓氏)가 큰 공이 있어 대광(大匡)의 작호를 내리고, 홍주(洪州)의 속현이었던 고구현(高丘縣)[현재의 서산시 해미면(海美面)·고북면(...
-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행정은 공행정과 사행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행정은 중앙 및 지방 행정 기관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행하는 공적 행위를 지칭한다. 이러한 공적 행위는 주로 공공 정책을 입안하거나 결정, 집행,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하여 구현하게 된다. 반면 사행...
-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근거지로 하여 활동한 지방 토착 세력. 통일 신라의 쇠퇴와 더불어 지방 세력이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9세기 후반 이후 후삼국 시대에서 고려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지역마다 호족이라 불리는 세력가들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서산 지역에서도 호족 세력의 지배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나, 호족과 관련된 구체적인 양상은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