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4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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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梨峙戰蹟址 |
영어공식명칭 | Ichi Battlefield |
이칭/별칭 | 배티전투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노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4월 2일 - 이치전적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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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76년 - 이치전적비 건립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6년 - 웅치·이치전적지 기초자료 정밀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이치전적지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 |
소재지 | 이치전적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산12-15번지 |
성격 | 전적지 |
지정 면적 | 3,318,357.83㎡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완주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이치에서 1592년에 조선 관군과 왜군의 전투가 벌어진 장소.
[개설]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의 이치에서 1592년 7월 10일 이후 일본군이 금산에서 철수하는 9월 17일 사이에 조선 관군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다.
[변천]
이치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1592년 7월 7일과 8일에 이루어진 웅치전투에서 후퇴했던 조선 관군과 의병은 9일 안덕원전투에서 승리했다. 이에 일본군은 10일경에 웅치를 넘어 진안을 거쳐 금산으로 후퇴했다. 이에 조선 관군도 이치로 이동해서 그곳에 있던 군사와 합류했다. 이치에 주둔한 조선군의 총지휘관은 광주목사 권율(權慄)이었으며, 동복현감 황진(黃進) 등 관군 1,500명이 주변에서 방어망을 구축했다. 일본군은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부대였으며, 금산에 주둔하고서 주변 지역을 약탈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이 진산 방면으로 진출하자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전투 중 황진이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기절해 후퇴하자, 일본군은 이치 정상으로 공격했다. 이때 권율 등이 맞서 싸워 승리했고 일본군은 금산으로 철수했으며, 9월 17일에 금산에서 철수했다. 전라북도는 이치전적지를 1976년 4월 2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26호로 지정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이치전적지는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12-15번지 일대이며, 이치는 운주면 산북리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이치전적지는 2016년 『웅치·이치전적지 기초자료 정밀조사』 과정에서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에 의해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
[현황]
이치전적지에는 1976년 4월 2일에 이치재 정상에 세운 기념비가 있으며, 이외에도 ‘무명용사비’를 비롯한 기념물들이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89번지[진산면 묵산리 산 79-34]에 이치대첩지를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