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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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院 |
영어공식명칭 |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 설립되었던 조선시대 사설 교육기관.
[개설]
서원(書院)은 16세기 이후 지방 사림들에 의해 건립된 교육 및 교화 공간이자, 대표적인 향촌 운영 기구 중 하나였다. 고려 말 조선 초 이래 선현에 대한 봉사 기능을 수행하던 사묘나 유생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던 사학은 별도로 존재하였지만, 그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서원이 처음 설립된 것은 16세기이다. 1543년(중종 38) 주세붕(周世鵬)이 건립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 되며, 이후 서원 보급에 앞장서고 그 성격을 규정한 것은 이황(李滉)이었다.
16세기 이후 서원은 향촌 사림의 핵심 기구로 부상하게 되고, 조선 사회에서 정치·사회·경제·교육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 후기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 서원은 기존의 교육 기능을 상실한 채, 향촌 사회 내에서 특정 문중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사회적 기구로 변질하였다. 이에 전국적으로 서원 남설 현상이 가중되었으며, 각종 사회적 폐단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흥선대원군은 전국의 서원과 사우 가운데 47개소를 제외하고, 모두 철폐하는 조치를 하였다.
지금 영주 지역은 조선시대 영천군(榮川郡)·순흥도호부·풍기군 지역으로 우리나라 서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순흥도호부[설립 당시 풍기군] 지역에 설립되었으며, 이황에 의해 소수서원으로 사액 되었다. 또 이황은 영천군 지역을 오가며, 이산서원 건립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서원 운영의 모범이 되는 이산서원 원규를 제정하였다.
[영천군 지역의 서원]
『여지도서(輿地圖書)』,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영주지(榮州誌)』, 『동국원우록(東國院宇錄)』, 『교남지(嶠南誌)』 등에 수록된 조선시대 영천군 지역의 서원으로는 구강서원(龜江書院)·구산서원(龜山書院)[구산정사(龜山精舍)]·구호서원(鷗湖書院)·방산서원(方山書院)·사계서원(泗溪書院)[사계정사(泗溪精舍)]·산천서원(山泉書院)·삼봉서원(三峯書院)·오계서원(汚溪書院)·오산서원(梧山書院)·오천서원(梧川書院)·운곡서원(雲谷書院)·영주 의산서원(義山書院)·영주 이산서원(伊山書院)·장암서원(壯巖書院)·한천서원(寒泉書院) 등이 확인된다. 이를 행정구역별로 정리하면 가흥동에 오산서원·한천서원, 문정동에 산천서원, 상망동에 장암서원, 영주동에 구호서원, 휴천동에 구강서원·구산서원, 안정면에 사계서원, 이산면에 방산서원·삼봉서원·영주 이산서원, 장수면에 영주 의산서원, 평은면에 오계서원·운곡서원이 있었다. 이 중 오천서원은 현재 봉화군 관할이다.
옛 영천군 지역을 가장 대표하는 서원은 영주 이산서원이다. 영주 이산서원은 1558년(명종 13) 군수 안상(安瑺)이 이황에게 자문하여 창건하였다. 1559년 이황은 ‘이산’이라는 서원의 명칭뿐만 아니라, 사당과 강당의 당호, 기문과 원규를 지어 주었다. 1574년(선조 7)에는 사액이 이루어졌는데, 이산서원은 옛 영천군 지역의 유일한 사액서원이다.
영천군 지역의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모두 철폐되었으며, 이후 방산서원·오계서원·영주 의산서원·영주 이산서원이 복설되었다. 산천서원은 산천서당으로 복설 되어 선조를 기리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순흥도호부 지역의 서원]
『여지도서』, 『재향지(梓鄕誌)』, 『연려실기술』, 『동국원우록』, 『교남지』 등에 수록된 조선시대 순흥도호부 지역의 서원으로는 구고서원(九皐書院)[구고서당(九皐書堂)]·구만서원(龜灣書院)[구만서당(龜灣書堂)]·단계서원(丹溪書院)·도계서원(道溪書院)[도계서당(道溪書堂)]·문산서원(文山書院)·소수서원(紹修書院)·용연서원(龍淵書院)·행계서원(杏溪書院)[행계서당(杏溪書堂)] 등이 확인된다. 이를 행정구역별로 정리하면 단산면에 구고서원, 순흥면에 영주 소수서원, 안정면에 용연서원이 위치하였다. 구만서원·단계서원·도계서원·행계서원이 설립된 곳은 현재 봉화군 관할이다.
옛 순흥도호부 지역에서 가장 저명한 서원은 단연 영주 소수서원이다. 영주 소수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에 의해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건립 당시에는 백운동서원이었다.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조정에 청원하여 1550년(명종 5)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순흥도호부 지역 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 때 소수서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폐되었으며, 이후 구고서원·구만서원·도계서원·행계서원만 복설 되어 지금까지 향사를 지내고 있다.
[풍기군 지역의 서원]
『여지도서』, 『연려실기술』, 『풍기군지(豊基郡誌)』, 『동국원우록』, 『교남지』 등에 수록된 조선시대 풍기군 지역의 서원으로는 노계서원(魯溪書院)·우곡서원(愚谷書院)·욱양서원(郁陽書院)[욱양단소(郁陽壇所)]이 확인된다. 이를 행정구역별로 정리하면 봉현면에 노계서원, 풍기읍에 욱양서원이 있고, 우곡서원은 현재 예천군 관할이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서원은 1662년(현종 3) 설립된 욱양서원으로 이황과 황준량(黃俊良)을 제향하였다. 사액서원은 없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모두 철폐되었다. 이후 노계서원이 복설되었으며, 욱양서원은 욱양단소로 새롭게 만들어져 향사를 이어 가고 있다.
[근대 이후의 서원]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소수서원을 제외한 영주 지역의 모든 서원과 사우가 철폐되었다. 서원 철폐 직후 영주 지역 사림들은 단소를 설치하여 제향을 이어가기도 했다. 20세기 이후부터는 제향자의 후손이 주축이 되어 사당을 먼저 복설 하거나 서당을 만들어 제향을 이어갔으며, 점진적으로 서원을 복설 해나갔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영주시 단산면 사천리에 있는 백산서원(白山書院)은 개항기 항일의병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서재승(徐在承)을 제향하는 곳으로 1951년 창의사(彰義祠)로 건립되었다가, 1973년 백산서원으로 승격하였다. 백산서원은 건립 시기와 제향자의 성격을 보았을 때, 서원 문화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현재 영주 지역에 있는 서원 중 역사적·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되고 있는 서원은 모두 4개소이다. 이 중 영주 소수서원이 사적 제55호, 영주 이산서원이 경상북도 기념물 제166호, 영주 의산서원이 경상북도 기념물 제172호, 오계서원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5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