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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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雪雲峙 |
이칭/별칭 | 설운치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전구간 | 설운재 - 강원도 영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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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설운재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
성격 | 고개 |
[정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도화동에서 직동리의 한밭골로 가는 고개.
[개설]
설운재(雪雲峙)는 산이 높고 골 깊은 오지이다. 설운재 아래 도화동(桃花洞)에 조선 후기 비기서인 『정감록(鄭鑑錄)』을 신봉하는 강릉최씨 일가가 ‘도화낙지형국(桃花落地形局)’의 명당에 터전을 잡았다. 도화동은 밖에서 보면 마을 입구가 좁고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 같으나 그 안은 넓고 땅이 기름져서 농사가 잘되고 6·25전쟁 때도 인민군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명칭 유래]
산이 높아 늘 눈과 구름이 많이 쌓이는 곳이라 설운재라 불렀다.
[자연환경]
백두대간인 함백산[1,572,9m]이 백운산과 두위봉을 거쳐 산솔면 직동리 질운산과 화절치[꽃꺾이재]를 지나 설운재로 이어진다. 설운재는 ‘도화낙지형국’의 명성에 걸맞게 자연경관이 빼어나 녹전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많이 이용되었다. 2021년 현재는 사람도 살지 않고 고갯길도 풀이 우거져 발길이 끊겼다.
[현황]
도화동 왼쪽은 도타리마을이고 오른쪽은 설운재마을이었다. 설운재는 논은 없고 10여 가구의 화전민이 산비탈에 개간한 밭농사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화전 정리와 1980년대 삼성석회 채석장이 생기면서 마을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