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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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岾 |
이칭/별칭 | 조을치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송학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엄흥용 |
전구간 | 조리재 - 강원도 영월군|충청북도 제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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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조리재 -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 |
성격 | 고개 |
높이 | 523.4m |
[정의]
강원도 영월군 남면 토교리에서 충청북도 제천시 두학동, 송학동 무도리로 가는 고개.
[개설]
조리재는 왕박산(王朴山)[579.3m] 줄기에 있으며 충청북도 제천시로 넘어가는 큰 옛길이었다. 조리재의 지형이 조리 형국이어서 곡식이 많이 모여들어 당대에 발복할 큰 부자가 나는 명당이 있다는 ‘조리재의 유골’ 전설이 전한다.
옛날 충청도 지방에 성품이 몹시 경망스러워 주위 사람들이 이름 대신 ‘조리’라는 별명을 붙여 준 인물이 살았다. 그런데 김조리는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조리는 혹시 아버지의 묘를 잘못 써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아버지의 유골을 괴나리봇짐에 소중히 거둔 다음 명당이 많다는 강원도를 향하여 발길을 옮겼다. 김조리가 왕박산 밑 점제에 도착하자 날이 저물었다. 김조리는 주막집의 목로방(木盧房)에서 아버지의 유골이 든 봇짐을 가슴에 안고 있다가 잠자리에 들 때에야 머리맡에 모셔 놓고 장사꾼들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아버지의 유골이 든 봇짐은 없어지고 참빗 장사꾼의 큰 보따리만 남아 있었다. 유골 봇짐을 잃어버린 김조리는 대성통곡을 하였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김조리는 유골 봇짐과 바뀐 참빗 보따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참빗이 잘 팔려 큰돈을 벌었다. 그 후에도 하는 일마다 잘되어 몇 년 안 가서 장가도 들고 땅도 많이 사서 큰 부자가 되었다. 한편 참빗장수는 김조리가 봇짐을 소중하게 여기므로 새벽에 봇짐을 훔쳐 조리재 중턱에서 풀어 보니 뜻밖에도 사람의 유골이 나왔다. 참빗장수는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서 유골 봇짐을 큰 참나무 밑에다 휙 던져 버리고 조리재를 내려오다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참나무 밑에 유골을 묻어 주었다. 이후 참빗장수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전전하다가, 10여 년이 지난 후 충청도의 큰 부잣집 머슴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아버지 산소에 벌초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머슴이 된 참빗장수가 “주인어른, 올해도 벌초를 안 가시렵니까?” 하고 물으니, “나도 예전에는 자네처럼 머슴살이도 하고 행상도 하였다네. 그러나 하도 되는 일이 없어서 아버지의 유골을 강원도의 명당자리로 모시고 가던 중에 어는 참빗장수가 실수로 봇짐을 바꾸어 가는 바람에 아버지의 유골을 잃어버렸다네.”라고 하였다. 주인의 말을 들은 머슴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제가 바로 그때 유골을 훔쳐 간 참빗장사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주인은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아버지의 유골을 찾게 해 달라고 말하였다. 다음 날 김조리는 이름난 지관과 머슴과 함께 조리재 큰 참나무 밑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찾아냈다. 지관은 유골이 묻힌 묘를 한참 주시하더니 “어느 유명한 지관이 당대에 발복하는 조리 형국의 혈에다 묘를 잡아 주었소?”라면서 놀라는 것이었다. 그 후 김 부자는 참빗장수였던 머슴에게 많은 재산을 나누어 주고 친형제처럼 사이좋게 살았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왕박산 조리재의 명당에 쇠를 밖아 혈(血)을 끊은 자리가 있었다. 1995년 8월 14일 한전기공의 협조로 일제가 박아 놓은 쇠말뚝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였다. 한국방송공사의 전국 방영 속에 영월군수, 문화원장, 주민 등 200여 명이 참여하였다.
[명칭 유래]
조리재는 곡식을 모아들이는 조리 형국의 지형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조을치’라고도 한다.
[자연환경]
조리재는 왕박산 자락에 있는 해발 523.4m의 고개이다.
[현황]
조리재가 있는 왕박산에는 2021년 현재 해발 579.3m라고 적힌 표지석이 있다. 그리고 고려가 멸망하자 왕씨들이 숨어 살면서 훗날 성을 박씨로 고쳐서 왕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왕박산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영월군과 제천시를 연결하는 국도 제38호선과 자동차 전용도로가 개통되어, 2021년 현재 조리재를 찾는 일반인들은 없고 등산객들의 발길만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