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30 |
---|---|
한자 | 開心寺靈山會掛佛幀 |
이칭/별칭 | 「개심사 영산회상괘불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8월 8일 -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제1264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 보물 재지정 |
제작 시기/일시 | 1772년 12월 - 제작 |
현 소장처 | 개심사 대웅보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신창리 1] |
원소재지 | 개심사 대웅보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신창리 1] |
초본 소재지 | 통도사성보박물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번지 |
성격 | 탱화 |
작가 | 유성|유위|성총|보은|상흠|부일|신일|법전|금인|의현|쾌종 |
서체/기법 | 비단 바탕에 채색 |
소유자 | 개심사 |
관리자 | 개심사 |
문화재 지정번호 | 보물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 대웅보전에 있는 괘불도.
[개설]
괘불도는 사찰에서 야외 의식이 거행될 때 사찰 주불전 앞인 상단(上壇)에 걸어놓는 대형 불화를 가리킨다. 괘불도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인 조선 후기에 본격적으로 조성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삼신불(三身佛), 삼세불(三世佛), 석가불, 노사나불, 미륵불 등을 주존불(主尊佛)로 한 괘불도가 조성되었으며, 이중 석가불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靈山會) 장면을 담은 괘불도가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
괘불도의 형식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17세기 중엽에는 법당에 봉안되는 후불도처럼 삼신불, 삼세불, 석가불 등 주불이 결가부좌하고 주변에 권속이 외호한 형식이 제작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괘불도의 주불은 입상(立像)으로 그려졌다. 이 시기에 는 석가불과 보관을 쓴 장엄형 여래가 꽃을 든 도상과 『오종범음집(五種梵音集)』에 의거해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아미타불과 다보불 등으로 구성된 괘불도 형식이 유행하였다.
19세기에는 석가불 혹은 아미타불 아래 관음보살이 배치된 형식과 협시보살로 사자를 탄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표현된 괘불도가 제작되었다.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1772년 수화승 유성(有誠)의 주도로 제작된 불화로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1997년 8월 8일 보물 제126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족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010×587㎝이며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다.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화기에 적힌 글귀 ‘영산회괘불정(靈山會掛佛幀)’대로 화면 가득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불이 단독으로 표현되어 있다. 석가불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길게 내려뜨려 촉지인을 취하고 활짝 핀 연꽃을 밟고 있다. 그 옆에는 붉은 연꽃봉오리가 표현되어 있다.
석가불을 둘러싼 두광과 신광 테두리는 화염(火焰)으로 표현하였으며, 두광은 녹색으로 단순하게 칠한 반면 신광은 연꽃과 모란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석가불의 두광 주변으로 오색 서기가 표현되어 있으며 그 위로 3위(位) 존의 구름을 타고 모여든 타방불(他方佛)이 좌우에 표현되어 있다. 두광과 신광을 따라 7위, 8위의 타방불을 배치해 석가불의 설법을 듣기 위해 모여든 타방불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타방불 맨 아래에는 석가불의 협시보살로 추정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불 두광 오른쪽에는 지권인을 한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 왼쪽에는 양손을 어깨 위로 올린 설법인을 한 노사나불(盧舍那佛)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석가불을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하고 그 좌우에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로 둔 삼신불 형식을 하고 있다. 화면 배경은 구름으로 가득 메워 마무리하였으며, 화면 상단에는 풍패(風佩)가 그려져 있다.
[특징]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화면 중앙에 석가불을 배치한 독존형 형식처럼 보이나 석가불 좌우로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배치한 삼신불 형식을 하고 있다. 17~18세기에 조성된 삼신불 형식 괘불도는 「갑사 괘불도」[1650], 「봉선사 괘불도」[1735], 「수타사 괘불」[18세기]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 삼신불 형식 괘불도는 가운데 법신(法身)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일한 크기의 보신(報身) 노사나불과 화신(化身) 석가불을 배치한데 비해 「개심사 영산회상괘불탱」은 화면 가운데 석가불을 크게 배치하고 좌우에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두어 삼신불 중 석가불을 강조하였다. 화면 가운데 석가불을 배치하는 방식, 촉지인의 석가불, 두광과 신광에 타방불과 협시보살을 배치하는 방식 등은 같은 시기 경상북도에서 활동한 수화승 정일(定一)의 「축서사 괘불도」[1768]와 표현이 유사하다.
[의의와 평가]
유성(有誠)은 18세기 후반에 통도사를 거점으로 경상도에서 주로 활동했던 화승이다. 개심사 영산회 괘불탱은 유성이 충청남도에서도 활동하였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개심사 영산회상괘불탱」은 석가불을 중심에 두고 좌우에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을 배치한 단순한 구성을 하고 있지만, 유성의 불화에서 볼 수 있는 당당한 체구의 석가불, 화면을 꽉 채운 광배, 그리고 화려한 문양과 구름으로 화면을 빈틈없이 메우는 표현 기법 등이 잘 반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