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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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開心寺神衆圖 |
이칭/별칭 | 「개심사 대웅보전 제석·천룡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개심사로 321-8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윤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개심사 대웅보전에 있는 신중도.
[개설]
신중도는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불화이다.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각 전각마다 걸리기 때문에 한 사찰에 여러 점의 불화가 전한다. 고려 후기에는 제석천을 단독으로 그린 제석천도가 제작되었으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제석천과 위태천을 단독으로 그린 신중도, 제석천과 범천 및 위태천을 함께 주존으로 그린 신중도 또는 대자재천, 예적금강이 추가된 신중도 등 다양한 형식과 존상을 복잡하게 구성한 신중도가 제작되었다. 「개심사 신중도」는 1895년에 수화승 금호당(錦湖堂) 약효(若效)와 정련(定鍊), 행열(幸悅) 등이 조성하였으며 화면에 예적금강,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을 중심으로 많은 권속이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개심사 신중도」는 액자형으로 화면 크기는 180×165㎝이다. 화면은 면 바탕에 채색하였다. 화면 구성은 상단 왼쪽에는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주존으로 일월천자(日月天子)가 에워싸고 그 오른쪽에는 예적금강(濊跡金剛)과 주악천녀가 모여 있으며, 구름을 경계로 화면 하단은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무장한 신장들을 배치한 상하이단으로 존상을 구성하였다.
범천과 제석천은 보관을 쓴 천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범천은 연꽃을 들고 있으며 제석천은 합장을 하고 있다. 예적금강은 삼면다비(三面多臂)의 형상으로, 얼굴은 어금니가 위로 솟고 머리카락이 역발(逆髮)한 분노한 모습이며 목에는 해골 목걸이를 걸고 있다. 4개의 손 중 한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금강저를 들고 있으며 다른 두 손은 합장을 하고 있다.
위태천은 깃털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합장한 팔뚝 위로 금강저를 가로 질러 들고 있다. 위태천의 권속으로는 사자관을 쓴 건달바와 코끼리관을 쓴 야차 등의 팔부중과 조왕신, 산신을 비롯해 존명을 알 수 없는 신장이 표현되어 있다. 예적금강을 제외하고 범천과 제석천, 위태천 등의 권속의 시선과 자세는 모두 오른쪽을 향하게 하여 전각 중심에 있는 불상과 후불도로 집중되게 처리하였다.
[특징]
조선 후기에는 주존의 구성과 배치에 따라 다양한 형식의 신중도가 제작되었다. 19세기에는 기존에 제석천과 범천,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신중도에 새로운 주존으로 예적금강이 등장한 신중도가 유행하였다. 「개심사 신중도」는 구성과 도상에서 1867년 「봉인사 부도암 신중도」[용문사 소장]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
「봉인사 부도암 신중도」의 횡(橫)으로 범천과 제석천을 중심으로 한 천부의 권속과 주악천녀,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팔부중, 예적금강과 팔금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개심사 신중도」에서는 화면에 맞게 범천과 제석천을 중심으로 한 천부와 예적금강과 주악천녀를 상단에 배치하고 하단에 위태천과 팔부중을 하단에 배치하는 형식으로 변형하였다. 존상 표현과 설채법도 금호당 약효의 화풍을 반영해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개심사 신중도」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충청도를 대표하는 수화승 금호당 약효가 조성한 불화로, 약효의 신중도 가운데에서는 주존으로 예적금강을 표현한 유일한 예이다. 예적금강이 주존으로 등장하는 신중도는 19세기 전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개심사 신중도」는 「봉인사 부도암 신중도」 형식을 계승하면서 화승의 화풍을 반영해 존상 구성에 변화를 주었다. 현재 충청남도에 예적금강을 주존으로 하는 신중도로는 금호당 약효가 그린 「개심사 신중도」 외에 혜산 축연이 조성한 「보석사 신중도」[1911] 정도가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