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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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영어공식명칭 | Yeokwon (Traffic, communication and accommodations which Installed to the a traffic rou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순순 |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일대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시설.
[개설]
전통시대 역(驛)은 국가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중추적인 교통·통신시설이었다. 역제의 기원은 신라 소지왕 대에 설치한 우역(郵驛)의 설치에서 시작한다. 삼국시대 중앙집권국가를 구축하는 중에 지방통치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도로가 발달하였다. 또한 지역 간 물자와 문화의 전달 통로가 되기도 하였다. 신라가 통일한 후에는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재편했고, 그 과정에서 경주를 중심으로 교통로도 정비되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 들어와 성종대 지방제도가 정비되면서 역제도 개편되어 개경을 중심으로 전국에 22역도(驛道) 525역을 설치하고, 역의 위치나 역도의 대소와 중요도에 따라 대로·중로·소로 3등급으로 나누어 운영하였다. 고려시대 완주 지역에는 전주를 중심으로 하여 전라북도 일대와 충청남도 공주를 연결하는 전공주도(全公州道)에 속하는 삼례역(參禮驛), 앵곡역(鶯谷驛)[일명 장곡역(長谷驛)], 옥포역(玉庖驛)이 있었다. 또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전라북도 진안군을 거쳐 경상남도 거창군·합천군을 지나 경상남도 진주시와 연결하는 산남도(山南道)에 속하는 고산(高山)의 축산역(築山驛)이 있었다. 고려시대의 삼례역은 『고려사』에 따르면 1011년(현종 2) 거란의 침입을 받아 개경이 위험해지자 현종이 전라남도 나주로 피난을 가던 중에 지나갔다고 전해진다. 이때 박섬의 권유로 장곡역(長谷驛)으로 어가를 돌려 묵었다는 기록에서 장곡역도 처음 등장한다. 문인 이규보도 1,200년(신종 3)에 서울로 올라가면서 삼례역에서 말을 갈아타면서 시를 지었는데, 삼례역에서 서울까지 20개 역이 있다고 할 만큼 전라도에서 서울을 오고가는 지역의 길목이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의 역제가 확립된 것은 『경국대전』이 편찬되었을 무렵으로, 이후 약간 변동은 있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유지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41역도체제[역승 18, 찰방 23]에 537개 역이 분속되었다. 1535년(중종 30)에 역승의 폐단이 제기되면서 역승을 폐지하고, 찰방체제로 정비하고, 각 역도에는 찰방 1인을 두어 대개 10여 개 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완주 지역에는 삼례도(參禮道)와 제원도(濟原道) 2개 역로가 지나가며, 삼례도의 찰방역인 삼례역과 속역인 앵곡역, 그리고 제원도의 속역인 옥포역이 있었다. 그 중에서 삼례역은 전국을 연결하는 9개 대로에서 한양에서 통영으로 가는 길목이었으며, 또 한양에서 여수, 순천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정경운의 『고대일록』에 따르면, 군량을 싣고 순천으로 가던 중에 삼례역 앞에서 묵었다고 한다. 지역의 주요 길목으로, 삼례역은 조선 초기 종 9품의 역승이 파견되었으나 이후 문과급제자 중에서 종 6품 관원이 찰방으로 임명되었다. 『여지도서』「전라도 보유편」에 의하면, 삼례역에는 역리 20명, 번인 101명, 역노 18명, 역비 18명, 보인 382명, 일수 267명, 민호 204호, 역마 15필, 위답(位畓) 39섬 17마지기, 복호(復戶) 470결이 배정되었다.
전통시대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적인 시설이었다. 대체로 30리[12㎞]에 하나씩 두었으나 지형조건에 따라 간격이 다르기도 했다. 원은 교통편의의 제공 외에도 빈민을 구제하고 백성을 진휼하는 기능도 있었다. 조선시대 원은 인근 주민 중에서 덕망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고 원주전(院主田)을 역로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10개 원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전라도는 245개가 있었다. 완주군에는 전주부를 중심으로 동쪽 30리에 위치한 신원(新院), 남쪽 40리[16㎞]에 위치한 상관원(上館院), 북쪽 10리에 위치한 허고원(虛高院), 북쪽 35리[14㎞]에 위치한 삼례원(參禮院)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