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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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鶯谷驛 |
영어공식명칭 | Aenggokyeok(Traffic route) |
이칭/별칭 | 장곡역(長谷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순순 |
폐지 시기/일시 | 1462년 - 앵곡역 앵곡도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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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96년 - 앵곡역 폐지 |
관할 지역 | 앵곡역 -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설치되었던 교통편의시설.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앵곡역은 고려시대에 ‘장곡역’으로도 불렸으며, 전통시대 전라도의 주요 교통로로 기능하다가 1896년에 폐지되었다.
[관련 기록]
앵곡역이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사』 권94 「지채문 열전」, 4권 「세가」로, “삼례역(參禮驛)에 이르자 박섬(朴暹)이 아뢰기를 전주는 바로 옛 후백제이므로 태조께서도 싫어하셨으니, [중간 생략] 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장곡역(長谷驛)에 유숙하였다”라는 기사와 “왕이 장곡역에서 묵다”라는 기사이다. 또한 『고려사』 병지(兵志) 「참역(站驛)」에서 앵곡역이 속한 교통로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세종실록지리지』 권 151, 「지리지」, 전라도 조와 『세조실록』에서 역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앵곡역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호남역지』, 『호남읍지』 등에서 앵곡역의 위치, 관련된 역사, 관할 역, 운영 현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김시습의 『매월당집』에서 앵곡역을 소재로 한 시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앵곡역(鶯谷驛)은 고려 현종대 거란의 침입을 받아 개경이 위험해지자 나주로 피난하면서 1011년(현종 2) 1월 8일 현종이 삼례역에 이르러 박섬의 권유를 받고 장곡역에 가서 묵었다는 기사에서 삼례역과 함께 기록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고려시대 앵곡역은 전주를 중심으로 전라도 일대와 충청도 공주를 연결하는 전공주도(全公州道)에 소속된 21개 역 중 하나였다. 앵곡역은 고려 성종대 지방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현종대 이후 ‘장곡역’에서 ‘앵곡역’으로 역명이 변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앵곡역은 세종대 전국적으로 도로망 조직을 갖추는 과정에서 거산(居山)·천원(川原)·부흥(扶興)·내재(內才)·영원(瀛原)과 묶어 앵곡도(鶯谷道)로 개편되었다. 이후 1462년(세조 8)에 병조의 건의로 각도의 역참을 파하고 역로를 정비하면서 앵곡도는 폐지되고, 삼례도찰방이 정비되면서 여기에 편입되었다. 이후 삼례도찰방에 소속된 역으로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전통시대 앵곡역은 삼례역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의 주요 교통망을 담당했다. 한양에서 전라도로 들어서는 초입에 삼례역이 있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반석역과 앵곡역으로 갈라져 각각 통영으로, 해남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되었다. 그 길목에서 앵곡역은 김제, 정읍, 장성을 거쳐 해남으로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앵곡역은 중앙의 관리나 문인들의 왕래가 많았고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의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서 삼례역과 이곳을 지나면서 “유월 팔일에 앵곡역에서 천원(天院) 유충기(劉冲祺)를 만나 술을 조금 마시고 소축시(小畜詩)의 운자를 인용하여 각각 짓다”와 그 화답시를 수록했다. 조선시대의 문인 김시습도 『매월당집』에서 삼례역을 지나 이곳을 지나면서 “앵곡역에 묵다”라는 시를 남겼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앵곡역은 옛날 장곡역으로, 전주부 서쪽 3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본역[삼례역]에서 40리[16㎞] 거리에 있었다. 앵곡역에는 역리(驛吏) 11명, 번인(番人) 10명, 역노(驛奴) 3명, 역비(驛婢) 1명, 보인(保人) 46명, 보솔(保率) 23명, 일수(日守) 15명, 말 11필이 배치되어 있었다. 앵곡역의 운영경비를 위해 위답(位畓) 29섬 18두락, 복호(復戶) 46결 정도의 토지가 배정되었다. 반면 1895년(고종 32)에 편찬된 『호남역지』「삼례도역지 사례」에서는 마호(馬戶) 9인, 말 9필, 위답 25섬 13두락, 위전(位田) 4섬 2두락, 복호 46결로 약간 차이가 있다.
[변천]
앵곡역은 삼례도찰방의 속역으로 존속하다가 1896년(고종 33)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 앵곡역 현재 위치는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일대로 알려져 있으며,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에 ‘앵곡’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전통시대 앵곡역은 수도에서 전라도를 오고가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한 교통시설로, 이 시기 사람과 물자의 이동, 지역문화 형성과 교류 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