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량
-
삼가 박수량 전사청인 오사재(五思齋)를 중수한 사실을 기록한 글.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소재 전사청인 오사재는 1931년 족인들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현재까지 전사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고, 주위는 토담이 둘러져 있다. 재실 중앙과 우측은 마루바닥이며, 좌측은 온돌이 설치된 방으로 만들어졌다. 내부에는 현판,...
-
강릉향현사(江陵鄕賢祠)에 배향하고 있는 12향현의 언행과 업적을 수록한 책자. 향현사가 창건된 지 288년 되는 해인 1931년 가을에 편찬한 12향현 언행록이다. 책자에는 도면으로 화부산도와 사우도가 들어 있다. 강릉향현사는 1645년 강릉부사 강백년 등이 창건하고 조운 최치운, 수헌 최응현, 삼가 박수량, 사휴 박공달, 원정 최수성, 도경 최운우...
-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의 행적을 기록한 문집. 박수량은 1475년(성종 7) 출생하여 1504년 사마시에 입격하고 연산군 때 단상법(短喪法)에 반대하며 3년상을 치른 것으로 인해 살아서 정려를 받았던 효자이다.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되어 용궁현감(龍宮縣監)이 되었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낙향하여 향풍 진작에 기여하다가 1546년(명종 2) 사망하였다....
-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의 생애와 평전을 중심으로 엮은 책. 강릉 출신 교산(蛟山) 허균[1569~1618]에 대해 생애와 지역문화, 참의공댁 「홍길동전」 해제 등 지역문화와 연계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하여 1998년 발행한 연구서이다. ‘내 고향은 경포의 서쪽’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책은 강릉이 낳은 조선조의 한 인물, 교산 허균에 대한 평전으로 그의 생애와...
-
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생활을 담기 위한 공간 형태. 건축은 지역의 문화와 자연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특징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삶의 흔적을 표출하는 역사성이 깃든 건축물은 각 시대 문화를 대표하는 요소를 갖추고 오늘날까지 전승 보전되고 있다. 강릉은 영동 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로 정치, 교육, 문화의 중심지로써의 기능을 일찍부터 하여왔으며 이에 따...
-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위패를 모신 사당. 강릉시 저동길 113[저동 293번지]에 있는 강릉박씨대종회 소유의 경양사는 신라 일등공신 관설당(觀雪堂) 박제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박제상은 417년에 눌지왕의 명을 받고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왕의 동생 복호(卜好)를 데려 왔고, 다음에는 일본에 가서 볼모로 잡혀 있던 왕자 미사흔(未斯欣)을 신라로...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세훈(金世勳)이다. 안성이씨 이석진(李碩進)의 딸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낳았는데, 장남 김양(金讓)은 직장(直長), 둘째 김인(金訒)은 찰방(察訪), 셋째 김근(金謹) 주부(主簿), 넷째 김겸(金謙)은 별좌(別坐)였고, 사위는 심운(沈雲)과 참판을 지낸 허엽(許曄)이다. 1487년(성종...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속한 법정리. 동쪽으로는 사천 해수욕장, 서쪽으로는 덕실리, 남쪽으로는 방동리, 북쪽으로는 사천천을 건너 판교리, 석교리, 사천진리에 접해 있다. 미노리(美老里)의 ‘미노’란 ‘미니’란 말의 변형으로 ‘미’는 ‘흙’을, ‘니’는 ‘땅이 진’ 것을 뜻한다. 그러니 ‘미노[미니]’란 ‘흙이 진 마을, 진흙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또 삼가...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대관(大觀), 호는 강호(江湖)·사지(四止). 부친은 박시행(朴始行)이고, 모친은 영양남씨(英陽南氏)로 진사 남과(南薖)의 딸이다. 26세 때인 1495년(연산군 1)에 생원이 되었으나, 수신(修身)과 독서에만 힘쓸 뿐 벼슬에는 뜻이 없었다. 1516년(중종 11) 가을 금강산에 유람 왔던 충암(冲庵) 김정(金淨)이 박공달(朴公達)을 만나보고...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 삼가당(三可堂) 박수량(朴遂良)의 후손이다. 정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다. 아버지가 병이 났을 때 배설물을 맛보아가며 치료하였고,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아버지의 입에 흘려 넣어 7일을 더 살게 하였다. 그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사림에서 부영(府營)과 예조에 글을 올려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
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 박수량(朴遂良)의 후손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소생시켰으며, 어머니가 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흙덩이를 던져 오리를 잡아 드렸다. 어머니의 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는데, 우물까지 거리가 멀어 여름철 홍수 때나 겨울철 폭설 때에 불편이 많았다. 그...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군거(君擧), 호는 삼가정(三可亭). 부친은 교수(敎授) 박승휴(朴承休)이고, 모친은 영해이씨 감찰(監察) 이중원(李仲元)의 딸이다. 1504년(연산군 10)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모친상을 당한 뒤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1518년(중종 13) 7월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충청도사(忠淸都事)와 용궁현감(龍宮縣監)을 거쳐 사섬시주부(司...
-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수량(朴遂良)[1474~1546]의 묘비. 삼가 박수량은 1474년(성종 6) 강릉에서 출생한 인물로 현량과에 피천되어 용궁현감을 지냈다. 1814년(순조 14) 박수량의 행적을 기리고 후대에 보전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하리 박수량 효자각 안에 효자비, 효자각기와 함께 있다. 효자각 옆에는 쌍한정이 있다. 비...
-
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회양교수를 지낸 박영근(朴榮根)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사직(司直) 최방(崔滂)의 딸이다. 박승소(朴承紹), 박승서(朴承緖), 박승필(朴承弼) 등 3명의 동생을 두었다. 부인은 영해이씨 이중원(李仲元)의 딸이다. 기묘사림이며 효자정려를 받았던 박수량(朴遂良)의 아버지이다. 강원도 강릉시 시루봉길68번길 18[난곡동...
-
조선 전기의 문신인 박승휴(朴承休)의 묘비. 박승휴는 박제상의 후손으로 기묘사림이며 효자정려를 받았던 박수량(朴遂良)의 아버지이다. 1910년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다. 원래 묘소에 있던 비가 세월이 오래되어 글자의 마모가 삼해지면서 알아 볼 수 없게 되자 후손들이 재건립을 논의하여 다시 세우게 되었다. 강원도 강릉시 시루봉길68번길 18[난곡동 51번지] 선영...
-
조선 중기의 효자. 강릉 12향현(鄕賢) 중의 한 사람으로 본관은 강릉. 아버지는 박수량의 조카 선무랑(宣務郞) 박구량(朴久良)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최신로(崔信老)의 딸이다. 1563년(명종 18)에 효렴과(孝廉科)에 천거되어 사옹원 참봉이 되었다. 1566년(명종 21)에 청하현감(淸河縣監)으로 있다가 영평군수(永平郡守)와 청풍부사(淸風府使)를 지냈다...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형부(亨夫), 호는 송곡(松谷). 박제상의 후손으로 생원인 박중경(朴中敬)의 5대손이다. 훈도(訓導)인 박영식(朴榮植)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박곤강(朴崑岡)이다. 아버지는 진사인 박유검(朴有檢)이며 어머니는 밀성김씨(密城金氏)로 사어(司禦)인 김충일(金忠一)의 딸이다. 박정원(朴貞元)은 삼가정(三可亭) 박수량의 종질(從姪)로서 15...
-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정원(朴貞元)의 묘비. 박정원은 박수량(朴遂良)의 종질(從姪)로서 1506년(중종 1)에 태어났으며 1534년에 생원에 합격하고 154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 남학교수(南學敎授) 등을 지냈다. 비석은 1850년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 때에 거의 모든 문헌이 없어져 박정원의 관직과 연수(年壽)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에 11대 손인 박경로(朴...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속한 법정리.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북쪽 7번 국도와 바닷가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방동리 북쪽은 사천천이 바다로 유입하고 미노리, 사천진리와 경계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산대월리와 이웃하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산의 형세가 ‘방(方)’ 자처럼 되어 있어 방골 또는 방동이라 한다. 1916년 가매골, 왕상골, 후릿둔지를...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 속한 법정리. 구정면 덕현리와 강동면 언별리와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시동천 유역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현재 행정 구역으로는 상시동리와 하시동리로 구분되어 있다. 시동은 원래 ‘사동’이라 칭하였다. 박수량의 현손 박진해[호 완하당]는 1639년(인조 17) 기묘년 과거에 진사에 오른 선비이다. 박진해는 원래 강동...
-
1520년에 박수량(朴遂良)과 박공달(朴公達)이 세운 정자. 숙질간인 삼가 박수량과 사휴 박공달이 함께 한가로이 소요한 데서 유래한다. 박수량과 박공달이 관직에서 물러나 함께 소요하는 공간으로 건립하였다. 중수기가 두 개 걸려 있어 적어도 두 차례 중수되었음을 보여준다. 겹처마에 팔작 기와지붕이다. 정면은 8쪽의 세살문을 설치하였고, 측면에는 각 2쪽의 세살문을 설치하였...
-
쌍한정(雙閒亭)에 있는 기문(記文)과 중수기(重修記). 쌍한정은 1520년에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정자는 그 후손들에 의해 중수되었다. 박수량과 박공달은 쌍한정 옆에 있는 일유암(日遊巖)에서 함께 만년을 보냈다. 이로 인하여 ‘촌옹박리인일유암(村翁朴里仁日遊巖)’이라 새겼으니 지금까지 새긴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쌍한정에는 운곡(雲谷) 송한필(宋...
-
안성이씨 영재(瀛齋) 이석진(李碩珍)의 묘제를 지내기 위해 건립한 재실. 이석진의 호는 영재(瀛齋), 자는 세보(世寶)이며 안성이씨 강릉 입향시조이다. 1465년 평해에서 출생한 영재는 16세의 나이로 강릉에 들어와 죽헌동에 거주하였다. 1489년 24세의 나이로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지역 유림인 춘헌(春軒) 최수(崔洙), 보진당(葆眞堂) 권사균(權士均...
-
강원도 강릉 지역의 유교 관련 문화유산의 총칭. 강릉의 종교사에서 유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강릉향교의 건립 때부터이다. 1313년(충선왕 5)에 강원도 존무사(存撫使) 김승인(金承印)에 의하여 화부산(花浮山) 기슭에 강릉향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물론 그 보다 앞서 200여 년 전에도 이미 향교가 있었다고는 하나 문헌상으로 자세한 고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해. 아버지는 이오(李璈)이고 어머니는 채흥후(蔡興後)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과거에 올라 벼슬이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1645년(인조 23) 8월, 강백년(姜栢年)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전 직장(直長) 김충각(金忠慤)과 함께 건의하여 향현사를 세워 최치운(崔致雲)·최응현(崔應賢)·박수량(朴遂良)·박공달(朴公達)·최수성(崔壽峸)·최운우(崔雲遇...
-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안성이씨(安城李氏) 강릉 입향조인 영재(瀛齋) 이석진(李錫珍)의 묘비. 이석진의 호는 영재(瀛齋)이며 자는 세보(世寶)이다. 1465년 평해에서 출생하였다. 16세의 나이로 강릉에 들어와 죽헌동에 거주하였다. 1489년에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지역 유림인 춘헌(春軒) 최수(崔洙), 보진당(葆眞堂) 권사균(權士均),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전순인(全舜仁)의 가계와 행적을 기록한 비석. 전순인의 자는 원경(元卿), 아버지는 전계현(全繼賢), 어머니는 삼척심씨 심양보(沈梁甫)의 딸이다. 어촌 심언광, 삼가 박수량과 교유하였다. 1519년에 과거에 올라 벼슬이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이르렀다. 비문은 강릉부사를 지낸 박종정(朴宗正)이 지었고,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심보영(沈普永)이 글...
-
충신과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의 총칭. 1. 충신 강릉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강릉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를 위하여 헌신한 열두 명을 강릉향현사에 모셔놓고 그 뜻을 기리고 공로를 추모하고 있다.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을 비롯하여 눌재(訥齋) 이성무(李成茂),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 춘헌(春軒) 최수(崔洙),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 사휴당(四休堂)...
-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의 행정리. 하시동리는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와 대동리[안인리], 서쪽으로는 상시동리, 남쪽으로는 대동리·모전리, 북쪽으로는 월호평동과 접해 있다. 원래는 절골[寺洞]이었으나, 이웃 마을 안인리에서 살던 완하당(玩荷堂) 박진해(朴震楷)가 이 마을에 이사를 와서 보니 마을에는 글을 읽는 선비들이 많이 사는데, ‘절골’이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
-
하평마을에 남아 있는 문화유적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화가 남아 있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운양초교 아래에서 옛 철길까지의 넓은 들을 향교평(鄕校坪)[생계들]이라고 한다. 옛날 이 논이 강릉향교의 소유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논 부근에 12가구가 살았으나 병자년 포락 이후 모두 이사하여 지금은 그 터가 다 논이 되었다....
-
하평마을이 배출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이설당(梨雪堂) 김광진(金光軫)[1495~?]이 있다. 그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임(子任)이며 본관은 강릉 사천이다. 아버지는 김세훈(金世勳)이고, 형은 동지중추사 김광철(金光轍)이다. 1526년(중종 21) 생원으로서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537년 시강관이 되어 궁중의 법률을 엄격하게 할 것을...
-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사당. 향현사는 강릉 지방민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의 행적을 후세에 전하여 귀감을 삼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제례를 행하는 곳으로, 최치운(崔致雲) 등 6인을 배향하고 있다. 강릉 향현사 건립은 이 지역 오봉서원이나 송담서원의 경우와 같이 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관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루어졌다....
-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극진히 봉양한 사람.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의 문화적인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를 낳았다. 그들의 지극한 효심은 학자들의 문집에 담기거나 효자비(孝子碑)의 비문에 실려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덕행(德行)의 표준이 되어 왔다. 효행의 본보기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례들 중에서 특히...
-
박억추(朴億秋)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효자각 박억추는 충렬(忠烈) 박제상(朴堤上)의 후손으로 훈도(訓導) 박윤량(朴允良)의 아들이며 삼가(三可) 박수량(朴遂良)의 조카이다. 이 가문에서는 박수량과 사휴(四休) 박공달(朴公達)과 같은 효자들이 배출되었으며 박억추 또한 그들의 영향을 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삼강행실』에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하리의 사천천 하구에 있는 언덕. 후리둔지[揮罹屯地]는 예전에 사천천 하류로 파도가 치면 바닷물과 함께 양미리, 멸치, 새우떼들이 밀려와 마을 사람들은 고기를 잡기 위해 이 언덕에서 그물을 던져 후리질을 하였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즉, 그물을 치며 고기잡이 하는 모습이 지역이름으로 되었다. 후리둔지로 사천천이 흐르고 바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