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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700550
한자 安東金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사석리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사석리
집성촌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사석리
입향시기/연도 조선 전기
성씨시조 김숙승
입향시조 김인

[정의]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연원]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구 안동김씨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로 구분된다. 그중 신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930년(태조 13)에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우고 왕건에 귀부하여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 되었다. 그로 인해 고창군이 안동부(安東府)로 승격되었다.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되어 김습돈(金習敦)을 일세조로 삼고 안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김극효(金克孝)에 이르면서 명문가의 기틀을 다졌다. 김극효의 아들 5형제 중 맏아들 김상용(金尙容)과 막내아들 김상헌(金尙憲)이 유명하다.

안동김씨의 시조 김숙승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로, 김은열(金殷說)의 둘째 아들이며 고려 때에 공부시랑(工部侍郞),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중시조 김방경(金方慶)은 시조 김숙승의 6세손이며, 한림학사(翰林學士)로 병부상서(兵部尙書) 김효인(金孝印)의 아들이다. 김방경은 고려 원종 때 삼별초(三別抄)의 난과 왜구를 토평한 공으로 추충정난정원공신(推忠定難定遠功臣)에 책록되었으며, 도첨의중찬판전리사사세자사(都僉議中贊判典理司事世子師)로 치사(致仕)하였다. 그 후 상락군개국공(上洛君開國公)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들이 김숙승을 시조로, 김방경을 중시조로 삼고 안동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진천군에는 주로 이들 구 안동김씨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입향경위]

진천군의 안동김씨는 고려 말의 충신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 감찰 김인(金隣)이 진천군 진천읍 장관리로 이주하면서 장관리사석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400여 년 세거하였다.

[현황]

김효건(金孝騫)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조직하여 싸운 공으로 좌찬성에 증직되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진천읍 사석리에 세거하고 있던 김천주(金天柱)와 그의 아우 김천장(金天章), 아들 김성추(金聲秋), 조카 김성옥(金聲玉) 등은 의병을 일으켜 4충신으로 불리고 있다. 김정길(金廷佶)·김경익(金慶益)·김상환(金相煥)·김기선(金基先)은 효자로 이름났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진천군 관내에 거주하는 안동김씨는 340가구 1,015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진천읍 장관리에는 집성촌을 이루지 않고 각 성들이 자리잡고 있다.

[관련유적]

진천군 진천읍 사석리안동김씨 사충문(安東金氏四忠門)이 세워져 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안동김씨 가문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반군에 대항하였는데, 이들이 인솔한 의군들은 무기가 없어, 칼, 도끼, 괭이, 쇠스랑을 들고 적소를 습격하였다고 하여 속칭 ‘쇠스랑 충신’이라 불린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다*** 구안동김씨나 신안동김씨나 태동은 모두 경주김씨에서 파생된 것이다.
구안동이 늦게 태동되었어도 구안동이라 하는 것은 고려중엽과 조선전기에 크게 번창하여 안동김씨하면 구안동김씨를 칭하였던 것이 조선말 병자호란당시 김상헌과 조선말 세도정치로 인해 신안동김씨가 떠오른 것이다. 구안동이나 신안동이나 조상은 김알지 이후 경주김씨에서 파생된 가문으로 알고 있다
2019.06.07
꼰*** 김숙승 이집안은 간신김자점 김구 집안이고
안동김씨 세도 정치할때 천민으로 살던 집안 이라면서
그런데
어떻게 안동김씨냐
일반인들은 상락김씨 로 알고 있는직안 이잖아
2018.01.01
김**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 감찰 김인(金隣)이 를
김사렴(金士廉)의 증손자 감찰 김인(金隣)이 로 수정 바랍니다.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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