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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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衣生活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하 |
[정의]
의복과 장신구 등을 주요 요소로 하는 인류의 기본생활
[개설]
우리나라의 의생활이 근대와 만나는 시점은 대체로 1884년(고종 21) 갑신의제개혁(甲申衣制改革)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개혁은 전래 옷을 단출하게 만든 것이었지, 완전한 복제(服制)의 변화는 아니었다. 비록 1894년 갑오경장 때 단발령을 내렸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아마도 20세기에 들어와서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옷이 양복으로 서서히 바뀌는 과정을 밟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성남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내용]
오늘날 대다수의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성남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양복 중심의 의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다만 명절이나 잔치와 같은 특별하게 의미가 있는 날에 한복을 입어 축하의 뜻을 표시할 뿐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한복은 의례복으로 여전히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현지조사에 의하면, 적어도 1970년대까지 자연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돌, 혼인, 회갑과 같은 평생의례에서 한복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이 보였다. 이것이 1970년대 말에 오면서 변화를 겪는다. 즉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지면서 주택의 개량과 함께 복제의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남에 전래되는 의생활을 살피기 위한 현지조사 과정에서 주로 자연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기념사진들을 통해서 의생활의 변천과정을 살펴본 결과, 일상복은 대체로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서양식 옷을 주로 입었다. 이미 일제강점기 이후로 양복과 양장은 일상복이면서 동시에 의례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농민의 경우 노동복으로 트레이닝복을 주로 입었다. 모자의 경우에도 새마을 마크가 새겨진 모자나 체육대회의 기념모자 따위를 사용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의례인 돌, 혼례, 회갑 등의 경우에는 한복이 여전히 중요한 옷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