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남문화대전 > 성남의 마을 이야기 > 운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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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환옹은 본관은 용인이고, 조사시점 현재의 연령은 80세이다. 고연령임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좋고, 성격이 적극적이기 때문에 인터뷰의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곧바로 녹화에 참여해 주셨다. 다만 청년시절에 앓았던 축농증으로 인해 발음을 알아듣기가 약간 어려웠다. 조사자가 이해하지 못한 발음을 수차례 되물은 까닭이 이 때문이다. 이용환옹은 판교보통학교 11회 졸업생이다. 국민학교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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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환옹은 모두 4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농업을 하고, 차남은 수자원공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삼남은 자영업으로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남은 전문대를 졸업하고 기계회사의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큰자부는 고령박씨이고, 둘째자부는 덕수이씨, 셋째자부는 파평윤씨, 넷째자부는 김해김씨이다. 장녀는 남편이 갑자기 죽어 홀로 되었고, 이용환씨가 손자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있다. 차녀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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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중동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매우 깊은 산골로 야산과 구릉지대로 이루어졌던 곳이다. 노루와 산돼지, 여우가 민가 근처까지 출몰하기도 했고 무서운 도둑들이 이곳에 숨어 살기도 했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살던 안동김씨 중 한 사람이 호랑이 새끼를 주워와서 기르려다가 어미 호랑이가 나타나서 마을 전체가 두려움에 떨게 된 적까지 있다고 전한다. 또한 이곳은 예로부터 안동김씨, 경주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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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의생활은 인접 지역의 경우와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대개 경기도의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여름에는 남자들의 경우, 바지저고리와 고의적삼, 홑조끼 등을 입었는데, 등걸잠뱅이, 고의적삼 등은 빨래를 위해 여러 벌을 해서 입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치마저고리에 속곳 고쟁이 등을 입었다고 한다. 다만 친정과는 달리 운중동으로 시집을 오니 어른들의 저고리에 단추가 위에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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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중동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기 때문에 보리밥 등의 잡곡을 주식으로 하고 철마다 나는 야채 중심으로 식단을 짰었다. 반찬은 배추장아찌, 오이장아찌, 오이상채, 오이통김치 등을 많이 만들어 먹었고, 농사철에는 비빔밥을 즐겨 먹었다. 과거에는 음식을 보관하기가 마땅치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여름에는 높은 기온으로 음식물이 잘 상했으므로 상시로 밥과 반찬을 만들어 먹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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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중동의 이용환옹 주택은 얇은 편마암 돌조각들로 기와를 대신한 특이한 지붕으로 되어 있는 한옥이다. 과거에는 나무와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석유보일러로 교체한 상태이다. 원래의 칸수는 8칸 반인데, 여러 차례의 개축을 통해 크기는 매우 늘어났다. 최근에 개축한 것은 13년이 되었는데, 돈이 약 천여만원이 들었다. 먼저 볏집으로 쌓고, 그리고 비닐을 대고, 그 다음에 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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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굴길 - 갓골길의 변한 발음 •나무굴고개 - 분당에서 광주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 예전에는 나무가 많고 너무 험할 뿐만 아니라, 도둑들도 출현하여 청년들도 왕래하기를 두려워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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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과 태몽 - 정숙현 여사는 나이 어렸을 때 장남을 임신하고, 참외를 3-4개 따고 싸리 보구리에대가 수박 세 개를 담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차남 태몽은 친정집 우물 앞에 오디나무가 있는데, 큰 구렁이가 자기의 팔을 깨물어서 아주 놀라 잠을 깼다. 큰 구렁이를 보았기 때문에 둘째아들의 몸이 다른 아이들보다 컸다고 믿고 있다. 딸을 임신했을 때에는 태몽이 좀 달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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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초하루에는 제사를 지낸다. 정월 보름에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부럼깨기를 한다. 그러나 옛날에 여자는 제사 음식 준비와 빨래 때문에 그냥 쉴 새가 없었다. 단오나 초파일은 뭐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팔월 명절 때는 제사를 모시는데, 할아버지가 외아들이기 때문에 칠촌 당숙만 계시고 제사 지내는 사람은 많아도 누가 고기 한 근 사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들들을 기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