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유래]
고려 공민왕 때 낙계(落溪)라 부르던 곳으로 조선조 숙종~영조대에 벼슬을 했던 청백리 이병태(李秉泰)가 벼슬에서 물러나 이 일대에 숲을 가꾸니 숲안[수내(藪內)]라 불려지다가 한자어로 표기되면서 수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