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68 |
---|---|
한자 | 盆唐區藪內洞地域-隣接-亭子-洞槪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2동 |
정자동은 성남시 분당구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탄천이 동의 서쪽을 남출북류(南出北流 : 남쪽에서 나와 북쪽으로 흐름)하고 있다. 불곡산의 북서쪽 기슭에 해당되며 분당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기존의 정자동 행정구역에서 불정동, 신기동 등이 새로 생겨나면서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동의 북쪽은 백현로에 의하여 수내동 및 내정동과, 동의 남쪽은 정자로에 의하여 불정동과, 동의 서쪽은 내정로에 의하여 신기동과 구분되고 있다.
[동의 유래]
'정자동'이란 이름은 이 지역이 조선 중기 이후 왕족인 전주이씨의 세거지가 되면서 그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곧 조선 제 9대 임금 성종의 아들(12남) 무산군(茂山君)의 제5자인 태안군(泰安君) 이팽수(李彭壽)[1490~1525]의 묘역과 그 자손들이 터를 잡았으며, 태안군의 증손이 되는 이경인(李敬仁)[1575~1642]이 이곳에 낙향하여 터를 잡았다.
이경인은 자를 극보(克甫), 호를 정촌(亭村)이라 하였고,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원종공신이 되고, 함흥판관, 안산현감, 이천도호부사에 제수되었다.
그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이곳 탄천변에 내려와 정자를 짓고 한운야학(閑雲野鶴 : 한가한 생활을 영위함)으로 소일하였다. 그 후 그가 즐기던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마을 이름이 '정자리'가 되었고, 그의 호 '정촌'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정자는 옛사람들이 자연에 귀의하여 맑고 깨끗한 산천에 심신을 씻어내는 한편,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떠나 있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자는 산이 수려하고 물이 맑으며 전망이 탁 트인 곳에 짓는 것이 상례로 옛 사람들이 자연에 동화되고, 자연과 더불어 삶을 같이 하려고 하였던 정신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절벽 위, 강가, 산봉우리 등 어디에 존재하건 인공구조물인 정자(건물)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정자의 멋과 풍류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이규보(李奎報)는 그의 『사륜정기』에서 '사방이 툭 트이고, 텅 비고, 높다랗게 만든 것'이라고 하였지만 『후한서』에는 '여행길에 숙식시설이 있고, 관리가 백성의 시비를 가리는 곳' 이라고도 한 것을 보면 '정자'의 의미가 옛날의 '주막집 정', '역말 정', '기를 정', '머무를 정', '우뚝 솟을 정'에서 오늘날의 그냥 '정자 정(亭)'으로 통용되어온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