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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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院區銀杏洞地域-誌-個人史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동 |
[서정배]
1949년생(56세)으로 달성서씨이고, 태어나서부터 현재의 주거지 은행동에서 살았다. 6.25 직전에 태어났으며 현 남한산성 내에 있는 남한산성초등학교에 입학하여 2학년 초까지 다녔으며, 중간에 학군이 바뀌어 성남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거리는 남한산성초등학교가 조금 가까웠다. 당시 중부면에는 중학교가 없어 정식 인가도 나지않은 모란중고등학교에 다녔다. 그게 현재의 풍생중고등학교 전신이다. 정식으로 인가가 나면서 풍생중고등학교가 된 것이다. 고등학교는 서울 송파에 있는 광서고등학교를 다녔다.
서른 두 살부터 마을금고이사장을 맡게 되어 현재 마을금고 중에 가장 크고 잘 되는 금융기관으로 성장시켰다. 처음에는 가족들도 반대하고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성실과 인내로서 마을금고를 성장시켰다. 중간에 상무가 금고 돈을 횡령해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무난히 해결했다. 마을금고는 현재 9개 지점을 가지고 있다. 금광1동, 금광2동, 금광3동, 은행1동, 은행2동, 양지동, 상대원1동, 상대원2동, 상대원3동으로 전국에서 가장 크고 잘 되는 마을금고로 성장시켰다. 원래 선친이 재산을 모으셨지만 마을금고를 해서 지금 자산이 50억쯤 된다고 한다. 그 동안 9대까지 경선을 안 하고 이사장을 맡아왔지만 1999년도에 처음으로 경선을 했다. 시의회 의장을 했던 김상현씨와 경선을 해서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이는 김의장이 다른 일에는 모두 서이사장보다 훌륭해도 마을금고만은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여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한 번만 하고 이사장을 내놓는다고 하였다.
마을금고는 아파트 지역보다는 단독주택이 있는 곳이 잘 되었다. 아파트 지역은 돈이 많이 있어도 마을금고로 들어오는 돈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 문턱이 높아 서민들은 자주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은행동의 성남 동부새마을금고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아 성장하였던 것이다.
서 이사장은 어려서 17살 때부터 어머니가 교회에 다니도록 하여 현재 장로로 활동하고 가족이 모두 교회에 나간다. 당시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교회에 친구들을 딸려 보냈던 것이다. 어머니가 교회에 나가면 나쁜 짓은 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보낸 것이 현재의 서 이사장을 있게 한 것이다. 결혼도 교회에서 부인을 맞게 되고 복잡한 가정의례에 대한 것을 간소화할 수 있었다.
서 이사장은 어려서 ‘개천’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위로 두 명의 형제를 잃고 나서 자식이 귀하여 ‘개천’이라고 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개울의 모랫바닥에 옹달샘을 세 군데 파놓고 물이 고이면 그 물을 떠서 동이에 이고 와서 첫국밥을 끓여 먹어서 ‘개천’이라 하기도 했단다. 이는 앞의 자식이 죽었기 때문에 명 길라고 할머니가 손수 물을 길어 밥을 해 먹인 것이다. 자손이 귀해서 이름을 막 불러야 명이 길다고 집안에서만 ‘개천’이라 하였다 한다. 동네에서나 친구들이 막 부르게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