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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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徵-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박순임 |
[정의]
구징(具徵)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
[내용]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군 서부면 능내에는 지금은 흔적이 사라진 백제시대 왕릉이 있었다. 그 옆에 중종 때 공신인 구징의 무덤이 있다.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왕위에 오른 직후, 반정공신인 구징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영의정 성희안이 왕명을 받들고 팔도의 수령방백을 시켜 찾게 하니 구징은 속리산 법주사에서 은거하고 있었다. 중종이 반가워하며 입궐하기를 권했으나 구징은 향리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사양하였다. 연산군의 학정에서 사직과 백성을 구하기 위해 반정에 참여는 하였으나 선왕의 신하로서 불사이군은 할 수 없다고 끝내 벼슬을 마다하였다.
고향에 돌아가 한가로이 지내던 중 을묘사화가 일어났다. 이때 화를 입게 된 구수복(具壽福)이 구징의 집에서 피신을 하였다. 구징은 죄인을 숨겨주는 죄를 범했고 조정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중종은 구징의 죄를 문책하지 않았다.
구징이 칠십 세가 넘어 세상을 떠나자 생전의 공로를 표창하고 예장을 치루어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