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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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覺性 |
이칭/별칭 | 각성(覺性),징원(澄圓),벽암(碧巖),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 |
분야 |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현주 |
[정의]
1575년(선조 8)~1660년(현종 1). 조선시대의 선승(禪僧), 승병장(僧兵將).
[가계]
1575년(선종 8) 12월 아버지 김해김씨와 어머니 조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개설]
속성은 김씨(金氏). 자는 징원(澄圓), 호는 벽암(碧巖). 각성은 법명이다. 충북 보은 출생. 9세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생무상을 절감하고 출가를 결심하였다. 10세에 출가하여 설묵(雪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14세에 보정(寶晶)에게 구족계를 받고, 이후 선수(善修)[호는 浮休, 1543-1615]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해전에 참여하였고, 1612년 스승인 선수가 무고(誣告)를 당했을 때 같이 투옥되었으나 광해군이 그 덕행에 감복하여 그에게 판선교도총섭(判禪敎都摠攝)의 직함을 내렸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 축성 때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 임명되어 승군을 이끌고 3년 만에 성을 완성시켰으며, 이로 인해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라는 직함과 의발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국 3천명의 의승(義僧)을 모아 항마군(降魔軍)을 조직하였으며, 1641년 해인사에 머물 때 일본에 사신으로 임명되었으나 노쇠와 병으로 그 뜻을 따르지 못하였다. 1646년 화엄사에 들어가 지내다가 1660년 입적하였다. 제자에 수초(守初)[1590~1660]와 처능(處能)[?~1680]이 있다.
[학문과 사상]
각성은 수행에 통달하고 정혜쌍수(定慧雙修), 교관겸수(敎觀兼修)를 실천하였으며, 무자간화선(無子看話禪)을 중시하고 화엄에 해박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선원집도중결의(禪源集圖中決疑) 1권』, 『간화결의(看話決疑) 1권』, 『석문상의초(釋門喪儀抄) 1권』, 스승 선수의 시문집을 편찬한 『부휴당집(浮休堂集) 5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판선교도총섭(判禪敎都摠攝), 보은천교원조국일도대선사(報恩闡敎圓照國一都大禪師) 직함을 하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