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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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崔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에 화숙공파 최병서(崔炳序)[1916년생]의 13대조인 최덕지(崔德枝)[1628~1684]부터 자리를 잡고 세거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덕지의 손자 최삼곤(崔三崑)[1725~1780]은 무과에 합격, 첨정이었고, 증손 최완진(崔完鎭)의 3남 최홍량(崔弘良)[1808~1862]은 고금도 수군첨절제사어모장군 전라우수군을 역임했다. 중원구 도촌동 양짓말에 인천도호부사 최제(崔濟)의 7남 최상룡(崔商龍)[1668~1738]이 경기도 양주에서 분가, 이주하여 정착하였는데, 최상룡의 장남 최업갑(崔業甲)은 무과에 합격하고, 차남 최탑갑(崔榻甲)은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였다. 또 손자 최명희(崔命熙)는 가선대부이고, 최명순(崔命栒)은 첨지중추부사였다. 최상룡은 경주정씨네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고 그런 연유로 도촌동으로 이주한것 같다. 최상룡의 차남 최탑갑의 6세손 최영환(崔榮煥)[1822~1873]이 도촌동에서 분당구 궁내동으로 이주하여 5세손 최병성(崔秉成)[1953년생]에 이르고 있다.
[세거지]
중원구 도촌동 양짓말에 인천도호부사 최제(崔濟)의 7남 최상룡(崔商龍)[1668~1738]이 경기도 양주에서 분가,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자손이 세거함으로써 양짓말의 원주민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중원구 하대원동 이룡골 공설운동장 서쪽 지역과 분당구 삼평동 미듬골에도 세거지가 있다. 서현동 안골에는 도촌동 최상룡(崔商龍)의 장남 최언갑의 5세손 최성주(崔聖株)의 차남 최영대(崔榮大)[1801~?]와 3남 최영달(崔榮達)[1803~1864] 형제가 이주하여
정착한 이래 6대째 후손이 세거하였다.
분당구 이매동 갓골에도 세거하였고, 물방앗거리에는 도촌동 최업갑(崔業甲)의 5세손 통정대부 최성주(崔聖柱)의 장남 최영초(崔榮肖)가 분가하여 자리잡은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병익(崔秉益)[1926년생]은 최영초의 현손이다. 경주최씨는 성남시에 10개의 세거지가 있으나 집성촌은 형성하지 못했다.
[묘역]
경주최씨네는 경주정씨네와 외척관계로 인하여 경주정씨네 산에 최상룡 이하의 묘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응달말 뒷산에는 경주최씨 묘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