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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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關防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중원구 상대원동 |
집필자 | 김주홍 |
[정의]
육지내륙 또는 변경지역에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한 유적.
[개관]
관방유적은 봉수, 돈대, 산성 등 국경의 방비와 관련된 모든 유적을 지칭하는 용어로 해방유적(海防遺蹟)에 대비되는 용어이다.
오늘날 성남지역 내에 소재하는 관방유적은 크게 봉수(烽燧)와 돈대(墩臺)로 구분된다. 우선 봉수는 횃불과 연기로 변방의 급보를 중앙[병조(兵曺)] 혹은 지방[진보(鎭堡)]에 전달하던 군사적 목적의 통신수단이다. 다음 돈대는 성안 높직한 평지에 높게 축조한 포대(砲臺)를 말한다. 즉, 축조에 있어 그 안은 낮고 외부는 성곽으로 축조하며 여기에 설치한 포를 이용하여 적의 접근시 포를 쏘거나 사방을 관망할 수 있게 만든 작은 보루를 돈대라 지칭한다.
[내용]
현재 경기도 내에는 약 35개소 가량의 봉수가 각 시,군별로 산재하여 있는데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소재하는 천림산봉수(天臨山烽燧)는 조선시대 제2거 직봉노선의 내지봉수이다. 이 봉수는 그동안 토지박물관에 의한 세차례의 지표, 발굴조사를 통해 방호벽의 외부둘레가 내지봉수의 평균 규모이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학술적 가치가 큰 유적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5개소의 연조는 과거 봉수 운영당시의 하부 거화구조를 밝히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또한 성남지역에는 중원구 상대원동과 광주시 경계에 남한산성의 부속 방어시설인 신남성(新南城) 서돈대(西墩臺)와 동돈대 2기가 있다. 축조시기는 1752년(영조 28)에 유수 이기진(李箕鎭)의 건의로 이듬해 수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서돈대는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이곳에 호준포와 홍이포를 설치하고 방포를 하였는데 포탄이 행궁의 기둥을 맞추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돈대는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이곳을 점령하여 대포 7, 8문을 앉혀 놓았던 곳이라 전한다. 아울러 돈대가 위치한 신남성은 남격대(南格臺)라고도 하며, 원성과 마주하는 까닭에 대봉(對峯)이라고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