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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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大團地 |
영어공식명칭 | Large-scale housing complex in Gwangju-gu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유재환 |
[정의]
1968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에 조성된 일단의 주택 단지로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의 모체.
[개관]
광주대단지는 서울시의 빈민가 정비 및 철거민 이주사업의 일환으로 계획된 위성 도시로 현 성남시의 모체가 되었다. 당시 서울시는 곳곳의 무허가 건물에 대한 억제책을 수립하면서 서울로 집중되는 인구와 도시 빈민들에 대한 분산책으로 1968년 5월 7일 건설부로부터 개발 인가를 받아 1969년 4월 1일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 관할 지역[수진리, 단대리, 상대원리, 탄리의 4개 리] 일대에 주택단지 조성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토지 매입, 원주민 생계 대책 수립, 택지 조성, 철거민 입주와 택지 분양 등을 실시하였으며, 광주대단지라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생겼다.
[변천]
40여 년간 진행된 한국 도시개발의 시작점에는 박정희 정권의 근대화 바람 속에서 진행된 ‘광주대단지 사업’이 있었다. ‘광주대단지’는 1960년대 말, 서울시의 청계천 변을 비롯한 판자촌의 도시빈민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의 허허벌판 땅을 싸게 매입한 후 이들을 트럭으로 실어 날으면서 시작되었다. 일명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지구 일단의 주택지 경영 사업 계획’이었다.
광주대단지 개발사업은 서울특별시에서 철거당한 도시빈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시행한 사업이다. 그 결과 1968년 말에 중부면 성남출장소의 관할 인구가 6,000여 명에서 1969년 말에는 3만 5000여 명, 1970년에는 9만 6000여 명, 1971년에는 15만여 명으로 급증하였다.
한 세대당 66.11㎡[20평]의 땅이 분양되었고, 이 66.11㎡을 단위로 대단지 9.917㎢[300만 평] 땅이 쪼개어졌다. 그러나 이 대단지의 개발은 서울시가, 행정은 광주군이었던 까닭에 시행 과정에서 난맥상이 드러난 데다, 입주 후 도시 건설이라는 개발 정책의 모순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야산 일대에 가구당 66.11㎡씩을 분양받은 철거민들은 도시적 기능이라든가 생활 대책 등이 전무한 상황에서 살아갈 방안을 마련하기 힘들었고, 자연히 ‘딱지’의 전매 행위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철거민에게 제공된 분양권은 광주대단지를 ‘딱지’ 장사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광주대단지 분양권에 눈독을 들인 복덕방과 투기꾼, 퇴역 깡패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광주대단지를 환상적인 신흥 도시로 만들겠다는 국회의원 후보들의 개발 공약이 넘쳐났고, 딱지가 팔리기를 반복하면서 그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부는 매입한 가격의 100배가 되는 금액을 불하 가격으로 제시하였다. 도시 철거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주대단지를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정부는 그 재원 마련의 방법을 ‘땅투기’를 통해 찾으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행정당국의 토지 불하 가격 과당 책정과 지방세 징수에 맞서 1971년에는 ‘8.10 광주대단지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20여만 명의 입주민이 기본적인 생존권을 확보하려는 극단적인 행동 표출이었다. 20만 명이 넘게 이주했지만 경제적 뒷받침이 될 수 있는 상권이나 업무 시설은 없었다. 화장실, 상하수도, 전화 같은 기반시설의 공급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생계 수단도 없었다. 당초 약속했던 일자리도 없었고, 물자를 공급해 줄 상가도, 그 어떤 주민 편의시설도 들어서지 않았다. ‘광주대단지사건’은 이곳에 삶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고 악착같이 공간을 일구려 했던 이들이 한국의 도시 개발사에서 처음으로 저항한 도시 빈민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정부 당국은 이러한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1971년 9월 경기도 성남출장소를 개소하여, 기존의 중부면 성남출장소 6개 리에다 광주군 관할의 돌마면, 낙생면, 대왕면 지역을 편입시키고, 10월에는 단지 개발의 관할권까지 서울시에서 경기도로 이양시켰다. 이로써 비로소 실질적인 일원화 조치가 마련되었고, ‘성남개발 3개년계획’에 따라 도시 건설 사업이 이루어졌고, 1973년 7월 성남출장소는 성남시로 승격되어 오늘날의 대도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성남시는 이렇듯 도시 빈민들의 애환을 담고 생겨난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