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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419
한자 廣州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성남시
집필자 문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수정구 사송동 짐너머골|신촌동 작은새말 두집메 안쪽마을|심곡동 응달말|창곡동 창말|하대원동 곡말|바깥말|안골|분당구 대장동 아랫장토리 벌말|야탑동 상탑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광주이씨는 광주(廣州)의 토성으로 성남을 본관으로 하는 명문이다. 광주이씨의 중흥조라 할 수 있는 고려 말의 이당(李唐)은 광주의 아전을 지내다가 생원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5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 그 중 둘째아들 둔촌(遁村) 이집(李集)이 고려 말에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과 깊이 사귀고 고려가 망하자 현재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은거하여 둔촌동의 지명이 되었다. 이집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이지직(李之直)탄천변에 은거하여 청백리로 일가를 이루고, 차남 이지강(李之剛)은 예조판서, 삼남 이지유(李之柔)는 목사였다. 이지직의 아들 이인손(李仁孫)이 우의정에 이르고, 아들 5형제 중 이극배(李克培)는 세조 때 좌익공신(佐翼功臣),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으로 광릉부원군(廣陵府院君)에 봉해지고 영의정에 이르렀다. 이극감(李克堪)광성군, 이극증(李克增)광천군, 이극돈(李克墩)광원군, 이극균(李克均)은 연산군 때 좌의정에 이르렀다. 이들 후손이 주로 오늘의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과 하대원에 거주하였다. 이들이 현달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쳐 이들이 살던 곳을 ‘오극(五克)골’이라고 한다.

[세거지]

수정구 사송동 짐너머골에 단대리에서 이주하여 세거하고, 심곡동 응달말, 창곡동 창말에 세거하였다. 중원구 하대원에는 이집의 서원이 있어 상대원의 송언신(宋言愼)의 서원과 이름을 달리하여 하대원이라 불렀다. 분당구 대장동(운중동 관할) 아래 장토리 벌말에 이만재(李萬載)[1926년생]의 9대조인 이요명[1657~1690]이 정착하여 세거하고, 야탑동에는 이극증[1431~1494]이 상탑에 자리잡아 후손이 세거하였다. 아들 이세홍(李世弘)은 공주목사, 손자 이복흥(李復興)은 부사과였다.

[집성촌]

수정구 신촌동 작은새말은 두집메 안쪽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으나 비행장으로 많이 편입되었다. 중원구 하대원동에는 곡말, 바깥말, 안골광주이씨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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