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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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美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관할에 있는 옛 지명.
[개설]
시와 구의 최남단에 있는 지역으로서 정자동과 구미동에 걸쳐 있는 해발 312.9m의 불곡산 기슭 서쪽의 평탄면에 있다. 관내 서쪽에서 탄천이 남북으로 흐르며 분당구 금곡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은 광주시 오포읍, 남쪽은 용인시 수지 지역[죽전지구], 북쪽은 분당구 금곡동 및 불정동과 접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가운뎃구미[中九美], 뒷구미(後九美), 골안(石村), 낭떨어지마을, 넘말, 머내(遠川), 벌말(坪村), 앞구미(前九美), 오리뜰, 잣골 등의 마을이 있었다.
[지명]
구미리(九美里)의 동명 유래는 설이 구구하여 어느 설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탄천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마을이 위치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일설에 의하면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이라 구미(龜尾) 또는 구산(龜山)이라 한 데서 연유되었다 한다. 또한 설에 의하면 이 지역이 김해김씨(金海金氏), 밀양박씨(密陽朴氏), 문화유씨(文化柳氏) 등 아홉 성씨가 각각 아홉 개의 마을을 이루며 살아서 구성리(九姓里)라 하였는데, 그 성씨들의 음이 모두 다르므로 ‘구음(九音)’이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서로 화목하게 살고 사람들도 순박하여 ‘구순(九順)’으로 부르다가 아름다운 일이 많다 하여 구미리(九美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금곡리와 동원리 경계 들판 가운데 있는 산이 거북이 형국이라 거북이 그늘 즉, 구음(龜陰)이라 한 데서 나온 이름이라고도 한다.
[연혁]
조선시대에는 용인군 수지면 죽전동(竹田洞) 일부와 원천동(遠川洞)의 일부지역이었으나, 1914년 광주군 낙생면 구미리로 칭하였고,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 관할로 편제되었다. 1973년 7월 구미동(九美洞)으로 개칭되는 동시에 성남시에 편입되었고, 1975년 3월 성남시 낙생출장소에 편입된 뒤에는 금곡동 관할이 되었다. 1989년 5월 1일 수정출장소(壽井出張所)와 중원출장소(中院出張所)가 각각 수정구와 중원구로 승격되어 중원구에 편입된 뒤 1991년 9월 17일 중원구 분당출장소가 분당구로 승격되면서 분당구 구미동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 금곡동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행정동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취락과 세거성씨]
구미동의 마을 중 골안은 넘말과 벌말 사이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 안에 있어 골안이라 칭하였으며, 돌이 많아 돌말(石村)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은 전의이씨로 알려져 있으며, 그뒤 안동김씨, 경주김씨도 정착하였으나 전의이씨(全義李氏)가 집성촌을 이루었다.
낭떠러지 마을은 산채밭산(낭떠러지 마을로 뒷구미 사이의 야산) 밑에 자리잡고 있어 낭떠러지 마을이라 칭하였다. 산말은 안골에 속했던 마을로서 개울 너머에 있어 넘말이라 하였다.
이곳에는 골안에 살던 전의이씨, 경주김씨 등이 분가하여 취락이 형성되었다.
뒷구미는 금곡동 샛터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서 뒤에 있어 뒷구미라 칭하였다. 이곳에는 밀양박씨, 경주김씨, 문화유씨 등이 살았으며 밀양박씨의 집성촌이었다. 머내(遠川)는 경부고속도로와 용인시 동천동 사이에 있으며, 머내는 먼내(遠川)의 변음이다. 벌말(坪村)은 앞구미 동쪽에 자리잡은 마을로서 전주이씨, 김해김씨가 일제강점기 때 이주하여 살면서 취락이 형성되었다.
앞구미는 구미동의 첫 마을로 구미동 최초의 취락이다. 이곳에는 문화유씨, 김해김씨 등이 최초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오리뜰은 성남시 최남단의 마을로서, 방풍림(防風林)으로 오리나무를 심으면서 오리들(일명 부평)이라고도 불리었다. 이곳엔 김해김씨가 처음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