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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석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751
한자 孟碩欽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29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신창(新昌)
대표관직 가선대부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신창맹씨 입향조인 조선 전기의 무신.

[개설]

맹석흠은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일등공신이 되어 신창군에 봉해졌고, 분당동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나라에서 하사한 토지]로 받아 신창맹씨의 세거지를 이루었다.

[가계]

본관은 신창(新昌).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를 지낸 맹계증(孟繼曾)의 아들이고, 좌의정(左議政) 맹사성(孟思誠)의 증손자이다. 아들 맹문인(孟門人)은 남양부사를 지냈고, 손자 맹은선(孟蘟善)은 평안도병사를 지냈다.

[활동사항]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치고 1461년(세조 7) 9월에 임금 앞에서 진법(陣法)을 강(講)하였다. 1463년 10월에는 종5품 평안도판관을 지낸 기록이 있다. 1467년(세조 13) 5월 이시애(李施愛)가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구성군 이준(李浚) 등과 더불어 출정하여 홍원, 북청 등지에서 대파하고, 그해 8월 마침내 이시애를 사로잡아 참수하였다. 9월에 난을 평정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봉해졌고, 12월에는 호분위(虎賁衛) 대호군(大護軍)에 제수되었다. 1468년(세조 14) 1월, 세조의 온양 행차 시에는 오위(五衛)의 잡류장(雜類將)으로 호송행차(護送行次)에 참여하였다. 1472년(성종 3)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신창군(新昌君)에 봉해졌으나, 이듬해 관병을 사사로이 빌려다가 마음대로 부렸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여산에 부처(付處)되었다가 1476년(성종 7) 5월에야 신창군의 직첩을 되돌려 받았다. 1480년(성종 11)에 다시 가정대부(嘉靖大夫)로 승진하였다.

[묘소]

맹석흠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 불곡산 동북쪽 형제봉(兄弟峰) 아래의 향목곡(香木谷)에 있었으나 분당 신도시 개발로 인하여 분당동 산56-1번지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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