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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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牡丹郵遞局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화정 |
[정의]
모란단지 사건 당시 모란지역에 세워졌던 별정우체국.
[설립경위]
모란단지 사건 은 일명 ‘김창숙(金昌淑) 사건"이라고 불리는 성남 개발 초기의 부동산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모란지역을 중심으로 4,200만평의 땅을 개발하여 인구 250만명을 입주시킬 목적으로 5년간에 걸쳐 1,328억원을 투자한다는 주택지 개발계획이었다. 이러한 모란주택지 개발계획은 광주대단지 면적의 12배, 투자액의 15배나 되는 엄청난 대규모사업 계획이었다.
김창숙은 평양에서 월남하여 군 생활을 하다가 32세 때인 195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고, 1961년에 3개월간 광주군수를 역임했다. 그후 1971년 서울에서 모란개척단을 설립하고 지금의 모란에서 가난하고 오갈 곳 없는 제대군인들을 모아 황무지 개간사업을 시작하여 대원천과 단대천 주변의 구릉지와 자갈밭뿐인 땅을 쓸모 있는 농토로 일구어 나갔다. 농지 개간에 들어가자 그의 뜻에 동조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 그 수가 50여 명이나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자 지명을 모란이라고 명명했고, 재향군인개척단을 ‘모란개척단’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그후 모란개척단에서는 입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관계기관과 협의하여 5일장인 모란장과 풍생중·학교와 풍생고등학교의 전신인 모란학원을 설립하고, 1970년 당시 별정우체국인 모란우체국을 개설하였다.
[변천]
초대 우체국장에는 당시 체신부장관인 장승태(張承台)의 아우 장승길(張承佶)이 부임하였다. 그 뒤 1972년 12월에 성남 서기관국 개관으로 업무가 일부 흡수된 뒤 성남 우체국에 흡수 통합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