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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075
한자 石再洪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서승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출신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500번지

[정의]

일제 강점기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원으로 활약하며 항일 의식을 심어준 문화운동가

[생애]

석재홍의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500번지이며, 1934년경 서울 훈정동(薰井洞)에 거주하였다. 훈정동에 거주하며 양복의 원단을 파는 양복지상의 일을 하였는데, 일명 일량(一良)으로도 호칭되었으며 사회주의의 문예 활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1931년부터 이동식 소형극장이라는 결사체를 결성한 후 출연 부서를 담당하여 활동하다 1934년 8월에 붙잡혀 옥고를 당했다.

[활동사항]

석재홍은 1931년 8월 경 추완호(秋完鎬), 김영득(金榮得), 최정희(崔貞熙), 이의백(李義柏) 등과 함께 서울 와룡동 시대공론사에서 회합하였다. 김영득은 1927년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한 인물이다. 석재홍은 프로레타리아 연극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고 사유재산 제도의 부인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이동식 소형극장이라는 결사체를 조직하였다. 이동식 소형극장의 부서는 책임연출부, 각본부, 미술장치부, 출연부, 선전부로 구분하였는데 그는 출연부를 담당하였다. 이후 수차례 회합하여 활동 방침을 협의하였는데 김영득, 최영희는 의견을 달리하여 탈퇴하였으나 석재홍은 마르크스주의 연극 활동을 고수하였다. 1931년 11월부터 1932년 5월까지 원산, 함흥, 고원, 서울 방면에서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계급의식을 확산시키려 했다. 1932년 6월경 서울 외아현동의 이천석(李千石) 집에서 간부회의를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 결사체의 명칭을 메가폰으로 고치고 연극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석재홍은 신사회 건설을 위해 이동극단 형태의 결사체를 조직하는 한편 연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대중에게 계급의식을 확산시켜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하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결과로 인해 1934년 8월 26일 일본 경찰에 붙잡혀 그 뒤 1935년 12월 9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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