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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432
한자 安明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18년연표보기
몰년 1548년연표보기
본관 순흥(順興)
대표관직 예문관검열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경응(景應)[혹은 慶應]. 아버지는 부호군 안담(安耼)이다.

[활동사항]

1544년(중종 3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 예문관 검열 등을 지냈다. 1545년(인종 1) 이기(李芑), 정순붕(鄭順朋) 등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많은 현신들을 숙청하자, 이 사실을 사관(史官)으로서 상세히 시정기(時政記)에 적어 넣었고 그 노고를 인정받아 이듬해 승정원 주서에 올랐다. 그러나 1548년(명종 3) 이기 등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이른바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찬집할 때, 을사년 당시 함께 사관으로 있었던 한지원(韓智源)이 시정기의 내용을 이기, 정순붕에게 밀고함으로써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안명세는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사관으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고 이기와 정순붕의 죄상을 지적하였고, 1567년 선조가 즉위한 뒤 1570년에 신원(伸寃)·복직되었다.

[학문과 사상]

박영(朴英)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술 및 작품]

안명세는 『이십사공신전(二十四功臣傳)』을 일찍이 저술하여 을사년의 일을 직척(直斥)했다고 한다.

[묘소]

안명세 묘는 원래 경기도 시흥시에 있었는데, 1960년대에 시흥 일원이 대거 택지로 개발되면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심곡동 산67순흥안씨 선영으로 이장하였다. 묘비는 명필 석봉 한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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