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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576
한자 尹慶元
이칭/별칭 선여(善餘)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생년 1560년연표보기
몰년 1592년연표보기
본관 칠원(漆原)
추증/추서 이조판서
시호 충장(忠壯)
묘지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선여(善餘). 할아버지는 우봉현령 윤이(尹伊)이며, 아버지는 호조판서 윤탁연(尹卓然)이다.

[활동사항]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양성현감(陽城縣監)을 지냈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의종군하여 경기도관찰사 심대(沈岱)의 명령을 받고 군량(軍糧)을 풍덕(豊德)으로 수송하였다. 심대가 삭녕(朔寧)에서 사민(士民)을 모집하여 수도를 회복하고자 할 때 그곳으로 달려가 삭녕군수 장지성(張志誠)과 협력하여 일을 도모하던 중에 왜장 이동우병(伊東祐兵)에게 탐지되었다. 그 결과 왜병의 복병 기습을 당하여 군수 장지성은 도주하고 그는 관찰사 심대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그는 전공은 세우지 못하였으나 조정에서 위국충절에 대한 뜻을 가상히 여겨 1593년(선조 26)에 증직의 은전과 함께 정려(旌閭)가 내렸다.

[기타]

도헌(都憲)으로 증직되었다는 이유로 시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1796년(정조 20)에 그것이 부당하다는 좌의정 채제공의 건의로 이조판서로 증직되었고, 아울러 충장(忠壯)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시장(諡狀)은 홍량호(洪良浩)가 지었고, 윤사국(尹師國)이 지은 행장이 남아 있다. 묘는 성남 하대원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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