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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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致章 |
이칭/별칭 | 윤재옥(尹在鋈),윤재원(尹在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서승갑,윤종준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묘가 있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본명은 윤재옥(尹在鋈)이고 윤재원(尹在元)으로도 불렀다. ‘치장(致長)’은 자이다. 아버지는 윤한섭(尹漢燮)이다.
[활동 사항]
윤치장(尹致章)[1876~1971]은 1907년에 7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일본군 기병대와 경기도 광주군 묵동에서 교전한 것을 비롯하여 경기도 동북부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윤치장이 능수능란하게 적을 공격하여 곤경에 빠지게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1908년에는 중군장 오사과(吳司果) 외 2명에게 박승호로부터 군자금 100원을 받도록 하여 그중 40원으로 탄약을 구입하도록 하는 등 무기 확보와 군자금을 모으다가 현재 서울 미아리 부근에서 적에게 체포되었다. 1909년 경성재판소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이후 15년 형이 확정되어 거의 만기에 출소하였다.
1965년부터 1974년까지 판교 지역을 중심으로 노인들의 한시 동인회인 ‘판교기로회’가 활동하였는데, 윤재옥[윤치장]이 90세의 나이로 참여하여 작품을 남겼다.
윤치장은 1971년 음력 8월에 96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일부 자료에 사망 연도가 1972년으로 나오는 것은 사망 신고가 늦어진 데 따른 것이다.
[묘소]
윤치장의 묘소는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다. 금토동은 남원윤씨의 세거지이다. 윤징(尹澄)의 아들 윤극신(尹克新)[1527~1589]이 별세하자 선조의 명에 따라 안동권씨네가 금현동 일대를 남원윤씨에게 주어서 그곳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