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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601
한자 尹皥燮
영어공식명칭 Yun Ho-seob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천화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829년연표보기
몰년 미상
본관 파평(坡平)

[정의]

1829년(순조 29)~?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거주지는 양주. 부친은 윤상대(尹相大)이다.

[생애]

1883년(고종 20) 식년시에 장원급제하였다. 이후 홍문관부교리, 사간원사간, 장례원장례를 역임하였다. 『고종실록』에는 7건의 윤호섭 관련기사가 등장하는데 세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1885년(고종 22)에는 역적에 대한 처벌과 화폐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 내용은 사적(四賊)을 체포하지 못하면 형벌과 법을 밝힐 수 없다는 것, 중국 사신의 원호(援護)한 공로에 대해서 응당 사당(祠堂)을 세워야 한다는 것, 화폐가 폐단으로 되어 인심이 험악하다는 것이었다. 1887년(고종 24) 윤4월 21일에는 홍문관부교리로서 연명 차자에 동참하여 죄인의 공술(供述)에서 나온 사람들을 잡아다가 신문할 것을 청하였다. 같은 해 6월 10일에는 도제조 심순택(沈舜澤)이 소대(召對) 시에 홍문관 관원이 단지 1명만이 강론에 참가한 것을 지적하며 부교리 윤호섭을 포함한 해당 관원 11명이 모두 나와 과오를 인정토록 할 것을 건의하였고, 고종이 이를 승인하였다. 같은 해 11월 2일 사간 윤호섭 등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들이 연명으로 차자를 올려 신환(申桓) 등을 석방시키라고 한 지시를 철회할 것을 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95년(고종 32) 4월 7일에는 새로 반포된 궁내부관제에 의거하여 장례원장례에 임명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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