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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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灌 |
영어공식명칭 | I Gw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습지(習之), 호는 만은(晩隱)이다.
이버지는 함열현감을 지낸 이덕항(李德恒)이며, 할아버지는 목천현감을 지낸 이배(李培)이고, 증조부는 문과를 거쳐 영흥부사를 지낸 이희인(李喜寅)이다. 고조부는 이륙(李稑)이고, 5대조는 이경안(李景顔), 6대조는 이통(李通)이다.
[활동사항]
이재(李縡)의 문인이다. 가난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하여 이름이 사방에 알려졌다. 음직(蔭職: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덕에 의해 맡은 벼슬)으로 계방(桂坊:세자익위사)에 올랐으며, 대신이 경행(經行)으로 천거하여 연산현감이 되었다. 1779년(정조 3) 이재의 문집 끝에 있던 홍계희(洪啓禧)의 이름을 삭제하였다 하여 정언 유맹양(柳孟養)의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관리명단)에서 제명되었다. 수직(壽職:해마다 정월에 80세 이상의 벼슬아치와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은전으로 주던 벼슬)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고 풍안군(豊安君)에 봉해졌다. 벼슬은 부총관에 이르렀고, 1791년 정조는 광주(廣州) 지방관에게 명하여 자신을 가르쳤던 이관의 안부를 묻기도 하였다.
[기타]
묘는 수정구 고등동에 있다. 고등동은 덕수이씨의 세거지이다. 풍성군 이의번(李宜蕃)의 묘가 조성되면서 덕수이씨들이 세거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해풍군파 이함(李菡)[1470-1534], 의정공파 이경민(李景閔)[1578-1652], 북계공파 이목(李穆)[1689~1742]의 후손들이 거주해 왔다. 이관은 이함의 9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