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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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克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임민혁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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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426년 |
몰년 | 1489년 |
본관 | 광주(廣州) |
자 | 백온(伯溫) 혹은 자안(子安) |
호 | 원봉(圓峯) |
제향 | 영광 보촌서원 |
묘지 |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산33번지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자안(子安) · 백온(伯溫), 호는 원봉(圓峯)이다. 이집(李集)의 증손이며, 이지직(李之直)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증예조판서 이예손(李禮孫)이며, 어머니는 박서(朴曙)의 딸이다.
[활동사항]
1446년(세종 28)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3년(단종 1) 식년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1455년(세조 1)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1465년에는 사헌부장령으로서 좌부승지 이영은과 함께 『경국대전』 이전(吏典)을 수교하였다. 1471년 1월에는 상당부원군 한명회가 “경명행수자(經明行修者)이니 사표직(師表職)에 제수해야 한다.”고 그를 천거하였다. 같은 해 2월 통정대부로 승진하면서 강원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그 뒤 성균관대사성, 예문관부제학, 승정원우승지, 좌승지, 대사헌,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그는 1479년 윤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하정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2년에 하정사 겸사은사로 또다시 다녀왔다. 1484년 공조참판 겸동지성균관사가 되었고, 이듬해 가정대부에 올라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이 때 경상도에 흉년이 들어 도적 떼가 들끓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특별히 삼도진휼사를 겸직하게 하였다. 당시 구민(救民)에 전력을 다하다가 과로로 병을 얻게 되었는데, 왕이 내의와 탕약을 보내어 치유하도록 하고 한직인 지중추부사로 옮겨 제수하였다. 근근봉공(勤謹奉公)하는 성품과 성리학에 정통한 재질로 성균관의 교육에 힘써,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사유자(師儒者)로 칭송되었다.
[기타]
영광 보촌서원에 제향(祭享)되었다. 묘소는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산33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