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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725
한자 李秉泰
영어공식명칭 Lee Byeong-tae
이칭/별칭 유안(幼安),동산(東山),문청(文淸)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성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88년연표보기
몰년 1733년연표보기
본관 한산(韓山)
대표관직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유안(幼安), 호는 동산(東山)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이며, 진사 이협(李浹)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715년(숙종 41) 진사시에 합격한 뒤 사릉참봉(思陵參奉), 평시서봉사(平市署奉事), 내자시직장(內資寺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에 발탁되었다.

1727년(영조 3) 예조참의와 호조참의를 거쳤고, 1730년 경상도 관찰사를 배수받았으나 병을 핑계로 부임을 사양하였다. 이듬해 승지로 임명되었으나 다시 사퇴하였다. 이 일로 영조의 노여움을 사서 합천군수로 좌천되었다. 합천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합천의 군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봄과 가을에 제향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나 관직을 떠나서나 항상 강직 결백하고 검소한 생활을 신조로 삼아 청백리(淸白吏)에 뽑히기도 하였다. 너무 가난하였기에 임종한 뒤 우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영조에게 굶어 죽었다고 아뢸 정도였다. 또한 죽은 뒤에도 장례치를 비용이 없어 감사 한지(韓祉)가 왕에게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부의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제학, 이조판서로 추증되고 문청(文淸)이란 시호를 내렸다.

[묘소]

묘는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에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2.10.29 [활동사항] 관직명 표기 수정 <변경 전> 경상도관찰사 <변경 후> 경상도 관찰사
2011.06.17 [수정]상세 정보, [추증] 소표제 수정 상세 정보 형태 수정 [추증]소표제를 [상훈과 추모]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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