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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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時鍾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서승갑 |
성별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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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 1900년 6월 11일 |
출신지 |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 |
[정의]
1900~? 일제의 부역과 세금 수탈에 반대하여 대왕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생애]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가 본적인 이시종은 1900년 6월 11일에 대왕면 수서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농업에 종사하던 중 19세의 나이로 송파시위에 참가한 후 자극을 받아 대왕면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헌병주재소에 연행된 뒤 일제에 의해 징역 1년형에 처해져 수감생활을 하였으며 1920년 4월 28일에 만기 출옥하였다.
[활동사항]
『조선독립신문』에 기재된 독립에 관한 12개 항목의 기사를 지니고 수서리에 돌아와 동리의 이재순(李載淳) 등 100여 명을 규합하여 만세 시위운동을 시작하였다. 시위대는 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에 집결하였고 일부는 면사무소에 진입한 후 『조선독립신문』을 꺼내 독립의 당위성을 낭독하였다. 이시종은 군중에게 '오늘까지는 이 면사무소에서 일본을 위하는 일을 보고 있었지만, 이제 조선이 독립하게 되어 부역, 세금 등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라고 자신의 소견을 발표하였다. 이시종은 다음날 헌병주재소원에 연행되어 정치에 관한 불온한 언동과 군중을 선동함으로써 치안질서를 방해했다는 보안법이 적용되었다. 이시종은 5월 15일 재판 결과 징역 1년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에 불복 투쟁하여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했으나 7월 26일 기각되고 고등법원에 상고했으나 10월 9일 기각되었다. 대왕면 시위운동을 주도한 이시종은 일제의 가혹한 부역과 세금에 반대하여 시위운동이 민중투쟁임을 명백하게 표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