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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781
한자 李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문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297년연표보기
몰년 1364년연표보기
본관 고성(固城)
대표관직 좌정승

[정의]

고려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고운(古雲), 호는 행촌(杏村)이다. 판밀직사사 감찰대부 세자원빈(判密直司事監察大夫世子元賓)인 이존비(李尊庇)의 손자이며, 철원군(鐵原君) 이우(李瑀)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지량(朴之亮)의 딸이고, 부인은 우대언 홍승서(洪承緖)의 딸이다.

[활동사항]

1313년(충선왕 5) 문과에 급제하고, 충선왕이 그 재주를 아껴 부인(符印)을 맡겨서 비성교감(秘省校勘)에 임명한 뒤 여러 번 옮겨 도관정랑(都官正郞)이 되었다. 충혜왕 때에 밀직대언 겸 감찰집의(密直代言 兼 監察執義)에 올랐으나 1332년 충숙왕의 복위로 유배되었다. 1340년에 충혜왕이 복위하여 다시 불러들여 지신사(知申事),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정당문학(政堂文學), 첨의평리(僉議評理) 등을 역임하였다. 충목왕이 즉위하면서 정사도(鄭思道)와 함께 정방제조(正房提調)에 임명되었는데, 환관 고용보(高龍普)가 인사를 공평하지 못하게 처리한다고 왕에게 진언했다가 오히려 밀성(密成)에 유배되었다.

충목왕이 죽자 서자 저(呧)[충정왕]를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원나라에 다녀와서 다시 정방의 제조에 임명되었고, 추성수의동덕찬화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工臣)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그 뒤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에 올랐다. 공민왕 초에 철원군(鐵原君)에 봉해졌고, 후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 되었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이 침입하므로 문하시중으로서 서북면도원수가 되었으나 얼마 뒤 겁이 많아 도원수로서 군사를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하여 평장사 이승경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1361년 홍건적이 개경을 핍박하므로 왕을 따라 남행하였고, 이듬해 3월 좌정승에서 사퇴하였다.

[정술 및 작품]

글씨에 뛰어나 동국(東國)의 조자앙(趙子昻)으로 불렸으며, 특히 예서와 초서를 잘 써 조맹부(趙孟頫)와 쌍벽을 이루었다. 문수원장경비(文殊院藏經碑)에 글씨가 남아있다. 그림으로는 묵죽에 뛰어났다.

[묘소]

이암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363년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할 때 호종한 공으로 1등공신으로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추성수의동덕찬화 익조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翊祚功臣)의 호를 받았다. 1375년(우왕 1) 충정왕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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