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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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禮長墓 |
이칭/별칭 | 이예장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산1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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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방형 쌍분 |
건립시기/일시 | 1456년 |
관련인물 | 이예장 |
높이 | 1.7m |
지름 | 5.3m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산 13 |
소유자 | 전의이씨 종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 있는 이예장의 묘.
[개설]
이예장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06년(태종 6)~1456년(세조 2)에 걸쳐 살았던 인물이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문(子文)으로, 전성부원군(全城府院君) 이사관(李士寬)의 아들이다. 1432년(세종 14) 진사시에 합격한 뒤 검열이 되고, 1448년 안숭선(安崇善)의 옥사로 장류(杖流) 되었다가 뒤에 풀려났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의 계유정난(癸酉靖難)을 도운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3등에 책록되어 전성군(全城君)에 봉하여졌다. 1455년 세조의 즉위에 협력한 공으로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었으며, 사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평간(平簡)이다.
[위치]
이예장의 묘역은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태봉산(172.2m) 정상에 남서향하여 있다.
[형태]
배위 정부인(貞夫人) 남양홍씨와의 방형 쌍분인 고려묘제(高麗墓制)의 양식이다. 봉분의 하단 전좌우(前左右) 세 면에는 둘레돌을 2단으로 높이 80cm 가량 마련하였고, 그 위에 봉토를 얹혔다. 봉분의 크기는 전(前)4.2m, 좌·우(左·右)5.3m, 높이 1.7m이며, 각 봉분은 후미에 기다란 용미와 활개를 갖추고 있다.
묘역에는 쌍분의 중앙에 묘표·상돌과 4·6각의 향로석 각 1기와 장명등 및 상돌 좌우로 복두(幞頭)의 문인석 한 쌍 외에 봉분 우측에 남서향하여 귀부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이수를 갖추고 1989년 10월 22일 건립된 묘표를 갖추고 있다. 특이하게 묘역에는 흔히 갖추고 있어야 할 망주석이 없다.
쌍분 중앙의 원래 묘표는 일석(一石)으로 비좌와 비신 및 화관옥개석[지붕돌] 형태이다. 비신의 비문은 앞면에만 있으며 대부분 마모로 판독이 곤란하다. 크기는 비좌 높이 18cm·너비 60cm·두께 40cm, 비신 높이 83cm·너비 46cm·두께 23cm, 지붕돌 높이 34cm·너비 52cm·두께 26cm이며 총 높이는 135cm이다. 상돌과 향로석은 근래에 새로 갖추어진 것으로 원래의 상돌은 봉분 뒤에 놓여져 있다. 문인석은 좌측이 높이 164cm, 얼굴 부분 50cm로 큰 눈에 코·입 등은 마모되어 윤곽만 남아 있고 귀에 귓구멍의 표시를 두렷하게 하여 놓았다. 홀(笏)을 마주잡은 두 손은 왜소하며 손가락의 표현이 없다. 옷소매는 길게 발목까지 늘어뜨려져 있다. 우측의 문인석은 높이 170cm, 얼굴부분 54cm로 좌측보다 약간 크나 흑적색으로 변색되었다.
[금석문]
봉분 우측의 묘표는 오석의 비신 4면에 공의 약력과 비를 새로 세우게 된 경위를 기록하여 놓았다. 비신 전면에는 세로 4열로 ‘贈推忠靖難左翼功臣兵曹判書諡平簡公行通政大夫兵曹參議全義李公禮長之墓 配南陽洪氏祔左’(증추충정난좌익공신병조판서시평간공행통정대부병조참의전의이공례장지묘 배남양홍씨부좌)의 비문이 있으며, 비문은 청강공(淸江公) 13대손 종린(鍾潾)이 찬하고, 문장공(文莊公) 21대손 용무(用茂)가 서하였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의이씨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