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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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完用生家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주홍,강승호 |
관련인물 | 이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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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최중선 |
[정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는 이완용의 생가.
[내용]
이완용[1858~192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대표적인 친일파 관료이다.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이다. 지금의 성남시 백현동 출신으로, 아버지는 이석준(李奭俊)이며, 판중추부사 이호준(李鎬俊)의 양자이다. 1882년(고종 19) 증광별시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1886년 육영공원(育英公院)에 들어가 영어와 신학문을 배웠다. 1905년 학부대신으로서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선 이래, 고종의 퇴위, 정미7조약의 체결, 군대 해산 등 일련의 친일 행위를 하다 1909년 12월 이재명(李在明)의 칼을 맞았으나 목숨은 건졌다. 1910년 8월 22일 총리대신으로서 어전회의에서 합병안을 가결하게 하고 같은 달 29일 나라를 일제에게 넘겨주는 데 앞장섰다. 전라북도 익산에 묻혔으며, 정치 행적과는 달리 당대의 명필이었다.
생가는 백현동 아랫말 안쪽에 위치하였는데, 가옥은 적절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많이 퇴락한 상태이다.
[현황]
1990년대 말 성남문화원 및 향토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완용 생가터를 연못으로 만들어 역적의 기운을 수몰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되기도 하였으나, 이후 이완용 생가는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채 2003년 시작된 판교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주변 지역과 함께 평탄화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2023년 성남문화원에서 친일 행적 등을 기록한 비석을 생가터에 설치하였으나 논란 끝에 엿새 만에 철거하였다. 2024년 기준 친일파 이완용의 생가터는 백현마을 8단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