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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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程 |
이칭/별칭 | 운장(雲長),남곡(南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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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성남 수정구 고등동 |
성별 | 남 |
생년 | 1618년 |
몰년 | 1671년 |
본관 | 덕수(德水) |
대표관직 | 좌우부승지 |
묘지 | 성남 수정구 고등동 등자곡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출신이다. 자는 운장(雲長). 호는 남곡(南谷).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참판을 지낸 이경헌(李景憲)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윤응빙(尹應聘)의 딸이다. 조부는 증 영의정 덕풍군(德豊君) 이통(李通)이고, 증조부는 이인상(李麟祥)이다. 처부(妻父)는 유황(兪榥)이다.
[활동사항]
1635년 을해년 소과에서 진사시에 합격한 후 관직에 진출하여 도사(都事)를 역임하던 중 1650년(효종 1년) 문과 증광시(增廣試)에서 을과(乙科) 4등으로 합격하였다. 1657년 정언, 이듬해 지평, 세자시강원사서를 거친 뒤 1659년 암행어사로 외방에 나갔다. 같은 해 찬집청 낭청으로 임용되고, 1662년(현종 3) 장령, 집의, 사간을 거쳐, 1664년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홍문관교리를 거쳐 1666년 홍문관수찬, 응교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통정대부(通政大夫)로 가자되었다. 같은 해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668년 좌우부승지, 승지로 승진하였다. 품성이 어질고 자신에 엄격하였으며 문재(文才)가 있었다. 관계로 나아간 뒤 교유를 삼갔고, 지방관으로 부임해서는 선정을 베풀었다. 누항에 거처하였을 때는 청빈한 선비와 같았다.
[묘소]
묘소는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덕수이씨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