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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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之恒 |
영어공식명칭 | Lee Ji-hang |
이칭/별칭 | 월여(月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성봉현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월여(月如)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이목(李楘)이고 어머니는 장수황씨로 현감 황우(黃佑)의 딸이다. 부인은 증 정부인 평산신씨로 유수 신감(申鑑)의 딸이다.
[활동사항]
1618년 경부터 송둔암(宋芚菴) 현주(玄洲) 조찬한(趙纘韓)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27년(인조 5) 식년시에 생원으로 합격하였고, 선교랑(宣敎郞)에 제수된 뒤 1633년(인조 11) 식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承文院) 가주서(假注書)에 제수되었다. 1637년 예문관봉교(藝文館奉敎)에 승진되었고, 그 후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옮기었다가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그해 9월 홍산현감(鴻山縣監)으로 나갔다. 1643년(인조 21)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사간원사헌납(司諫院獻納)을 역임한 후 이듬해 병조참지(兵曹參知)가 되었다.
1645년 우부승지를 거쳐 우승지(右承旨)에 오르고, 이듬해에는 다시 배천군수(白川郡守)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가 되었다. 1649년(인조 27) 대사간(大司諫)이 되어 한성판윤 이경엄(李景嚴)을 탄핵, 파직시키고, 이듬해 효종 즉위 후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제수되어 『인조실록』편찬에 수찬관(修撰官) 으로서 삼방당상(三房堂上)을 겸하였다. 1651년(효종 2)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는데, 이듬해 김자점(金自點)의 옥사 때 연루되었던 신면(申冕)의 사건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대흥(大興)으로 유배되었고, 다시 춘천에 이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1653년(효종 4) 전면 사유(赦宥)되어 다시 직첩(職牒)이 내려졌다.
[묘소]
묘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산28-1에 있다. 묘에는 묘표 1기, 상석 1기, 문인석 2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