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92 |
---|---|
한자 | 李澤 |
영어공식명칭 | I Taek |
이칭/별칭 | 탁지(卓之),우당(雨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오영 |
성격 | 문신 |
---|---|
성별 | 남 |
생년 | 1509년 |
몰년 | 1573년 |
본관 | 고성(固城) |
대표관직 | 예조참판 |
묘지 | 갈현동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탁지(卓之), 호는 우당(雨堂)이다. 아버지는 이교(李嶠), 할아버지는 병조참판을 지낸 문광공(文光公) 이륙(李陸), 증조할아버지는 이치(李穉)이다.
[활동사항]
1531년(중종 26)에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1538년(중종 3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했다. 그 후 예문과 검열, 전적, 승문원교감 등을 두루 거쳤다. 1542년 서학교수, 정언, 병조정랑, 지평 등을 지내고, 1545년(인조 1) 헌납을 지냈다.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 작성에 뛰어나 명나라로부터 찬사를 들었으며, 1547년(명종 2)에 은성부사, 1550년(명종 5) 남양부사를 지내고 1553년(명종 8) 동지중추부사로 동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온 뒤 동부승지, 1555년(명종 10) 우승지, 1558년(명종 13) 충청도관찰사, 1559년(명종 11) 도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 1562년(명종 14)에 황해도관찰사를 지낸뒤 병조와 한성부좌윤을 지낸 뒤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청렴 간결을 숭상하였고 근검절약한 생활을 하였다. 시문과 글쓰기, 활쏘기에 능하였다.
[묘소]
묘는 중원구 도촌동 산156-3에 있다. 도촌동은 고성이씨의 세거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