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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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喜益 |
영어음역 | Lee Hee-ik |
이칭/별칭 | 여숙(礪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성격 | 무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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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성남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
성별 | 남 |
생년 | 1633년 |
몰년 | 1718년 |
본관 | 덕수(德水) |
대표관직 | 수원감목관(水原監牧官) |
묘지 | 성남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등자리 출신이다. 자는 여숙(礪叔)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을 지낸 이경안(李景顔)의 손자이고, 이직(李稷)의 양자이며, 생부는 이륙(李稑)이다. 어머니는 신경락(申景洛)의 딸이다. 4남 1녀 중 장남으로 영흥부사(永興府使) 이희인(李喜寅), 이희환(李喜煥), 강원도 강찰사 이희룡(李喜龍)이 동생이다. 부인은 한기(韓虁)의 딸이다.
[활동사항]
어려서 큰아버지인 이직(李稷)에게 출계하였고, 1676년(숙종 2)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1680년(숙종 6) 서천포만호에 제수되었으나 이듬해 1681년 공청도 암행어사 김두명(金斗明)의 서계로 파직되었다. 1686년(숙종 12) 사헌부 감찰(司憲府 監察)에 제수되었으며, 그해 11월에 공조좌랑(工曹佐郞)을 거쳐 유원진 첨사(柔遠鎭 僉使)에 보임되었다. 1694년(숙종 20) 강동현령(江東縣令)으로 승진하여 부임하였다가, 평안도 어사 유봉서에게 구휼미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백성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였다는 서계(書啓)로 파직되었다. 1702년(숙종 28) 1월 수원감목관(水源監牧官)에 임명되었고, 1712년(숙종 38) 4월 부호군(副護軍)에 제수되었다. 정부인(貞夫人) 청주한씨(淸州韓氏)와의 사이에 3남 1녀가 있으니, 이영(李令), 이위(李偉), 이서(李垿)이고, 딸은 류재천에게 출가하였다.
[상훈과 추모]
사후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는 성남시 수정구 고등동 덕수이씨 선영에 있다. 덕수이씨가 등자리에 살게 된 것은 조선초기 풍성군(豊城君) 이의번(李宜蕃)이 죽은 후 국가에서 사패지[賜牌地:외교와 국방 등에서 큰 공을 세운 왕족이나 벼슬아치에게 임금이 내려준 논밭]로 내려진 것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