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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982
한자 張聚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84년연표보기
몰년 1770년연표보기
본관 결성(結城)
대표관직 오위도총부 도총관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결성(結城).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출신이다. 좌승지 장효민(張孝閔)의 손자이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장시서(張時瑞)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740년(영조 16) 사마시(司馬試) 진사(進士)과에 합격하였으며, 1756년(영조 32) 문과 정시(庭試)에서 병과(丙科) 3등으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장예원판결사를 거쳐 병조참판, 동지성균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등을 역임했다. 일찍이 대보단갱가(大報壇賡歌)에 참석하여 「구갑추유성모미전(舊甲追惟聖慕冞纏)」이라는 시를 읊어 『춘추(春秋)』의 의리를 사모하였다. 영조의 사랑을 받아 왕으로부터 어제인 『자성편(自省編)』『식경편(識慶編)』 그리고 어제어필인 「대보단갱첩(大報壇賡帖)」을 하사 받았다. 이 첩은 그의 8대손인 장기덕(張基德)에 의해 보존되고 있다.

옥산파(玉山派)의 장만급(張萬汲), 순천파(順天派) 장명천(張命天), 동관(同貫)의 장후섭(張後燮)과 상의하여 전주, 단양, 울진, 홍산, 화산 등 8관(貫)의 족보를 10년에 걸쳐 수성(修成)하고 서문과 발문을 지어 기록을 남겼다.

[묘소]

아버지 장시서(張時瑞)가 광주 돌마면 여수동에 정착한 이래 여수동을 세거지로 하였다. 묘는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었으나, 성남시가 개발되던 1983년에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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